현실이 지옥이야. 여기가 천국인줄 아냐..

by 시호

"현실이 지옥이야. 여기가 천국인 줄 아냐. 지옥에 온 이유가 있겠지. 벌 다 받고 가면 되겠지, 뭐."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선균 분)은 이지안(아이유 분)에게 소주를 따라주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신을 자르려고 5000만원 뇌물을 먹인 사람이 도준영(김영민 분)임을,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내가 도준영과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는 혼자 속으로 삭히는 방법을 택했다. 내 사람들만 모른다면 괜찮다, 괜찮다 되뇌는 박동훈의 현실은 이렇게 시나브로 지옥이 되어 간다.


그때의 내 삶도 지옥, 그 어디쯤엔가에 있었다. 남들 앞에서 결코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매순간이 울음을 꾹 참고 견디는 것이었다. 이렇게 내가 힘들다는 걸 가족들이 알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늘 미소지었지만 가슴은 하루하루 무너져 갔다.


그 날은 한없이 침잠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온몸을 격하게 흔들며 서럽게 눈물을 쏟아냈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때 알았다. 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힘들다고 우는 후배들에게 '그만 울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실컷 울고 감정을 쏟아내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게 그것 뿐이니까.


돌이켜보면 짧지 않은 사회생활 속에서 좋은 선배도 있었지만, 생애 최악으로 꼽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몇몇은 세간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러 기사까지 났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런 인간을 몇 년이나 상사로 모시면서 가슴에 멍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박동훈이 "현실이 지옥이야. 지옥에 온 이유가 있겠지. 벌 다 받고 가면 되겠지"라고 말한다.


그래, 지옥에 온 이유가 있겠지. 지금 저마다의 지옥을 살아내느라,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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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안다.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지옥일 순 없다. 이윽고 봄은 오니까.

다만, 가끔은 버겁다.

혹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서 큰다고 하는데 묻고 싶다. 왜 꼭 아파야 하냐고. 가끔은 온실 속 화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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