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때 옥석이 가려진다

by 시호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맥이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던 때도 있으니, 그 관리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간이 한 두해 지날수록 그 부질없음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물론 각계각층에 인맥이 있으면 좋다. 병원갈 때 아는 의사가 있다면, 송사에 휘말렸을 때 도움받을 법조인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지만 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자신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그 많던 인맥의 역학관계가 변모한다. 위기의 순간이라면 더더욱 옥석이 가려진다.


사실 옥석이 가려지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나는 너무 순진했다. 내가 진심이라면 상대방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단순하게 여겼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간단할까. 내가 100을 준다고 상대방이 똑같이 100을 돌려주진 않는다.


꽤나 친한 '언니'였다.

사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첫 만남에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반말하는 인간들을 하도 많이 만나다보니, 나라도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존댓말을 고집했다. 덕분에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말을 잘 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늘 존댓말을 하니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을 넘지않고 늘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 된 이와 언니, 동생이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이 사람은 내가 마음을 꽤나 준, '내 사람'이라 생각했던 한 명이다. 그래서 '언니'란 칭호도 어렵게 첫걸음을 뗄수 있었다. 이에 업무상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언제든 내 일처럼 나서서 처리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란 생각에.


하지만 역시나 모든 게 내 마음같을 순 없다. 언제나 편하게 통화하던 그녀와 어쩐 일인지, 이직 직후부터 통화가 안되기 시작했다. 하물며 만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 복잡 다단했던 일들을 다 세세하게 적을 순 없지만, 결국 알게 된 사실은 이직 후 내 효용가치가 떨어졌고, 이에 그녀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 중 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나에게 그녀는 업무를 뛰어넘어 '언니'가 되었지만, 그녀에게 나는 업무상 필요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를 시작으로 적지않은 사람들의 태도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혹은 보직이 얼마나 큰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나의 경중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꽤나 아픈 깨달음이었다.


마음이 아닌 효용가치로 인간관계가 결정되다니.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관계가 꽤나 많다. 나 역시 마음을 다친 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그녀와 업무상 필요에 의해 연락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음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녀는 나의 이런 가슴앓이를 모른다. 다만 나 스스로 그녀는 사회생활에서 필요하기에 어쩔수 없이 생명력을 이어가는 그렇고 그런 사람 중 하나로 정리됐다.


이렇게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며 하나 둘, 인간관계의 옥석이 가려진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돌'로 판명난 사람도 있지만 위기 속에서 진짜 '내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아플때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만남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내 사람들'이 빛을 발한다. 말벗이 되어주고 크리스마스에 깜짝 선물로 작지만 큰 행복을 선물한다. 그렇기에 위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극복하기가 꽤 힘들긴 하지만 그 시간들이 지난 후 진정한 내 사람을 만나게 됐으며, 그 경험들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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