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이 너무해

by 예프리 yefree

새벽 1시, 하얗고 단단한 플라스틱 통에 염색약을 주-욱 짰다. 불투명하던 하얀 액체들은 몇 번 휘저으니 점차 새까만 색으로 변했다. 마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내 속마음처럼 말이다. 빗자루 같은 나의 ‘노랑머리’에 벅벅 페인트칠하듯 검정색 염색약을 마구 덧발랐다. 독한 탈색약 냄새를 견뎌가며 샛노랗게 물들인 것은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되뇌었다.


금발은 나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선사했다. 파티에 가면 외국친구들이 호의적으로 다가올 것이란 기대심리였다. 내가 싫어하는 말을 듣기 전까진. 아니나 다를까, 날 처음 본 친구들은 “재팬? 차이나?”라고 물으며 나의 국적을 자기들 입맛대로 이중선택지로 좁혔다. 뒤따라 ‘정말 개고기를 즐겨먹냐’는 단골 질문과 ‘아시안들은 소심해서 파티 오길 꺼려하는데 넌 의외’라는 말들이 오갔다. 금발을 하면 이런 편견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과 애써 닮아보이게 해 ‘그들만의 리그’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눈엔 난 ‘웬 금발머리 아시안’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너무 창피해졌다. 한밤중에 염색약을 미친 듯이 바르던 이유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독일에 다녀 온 지 2년이나 흐른 지금은 이 에피소드를 가볍게 웃어 넘긴다. 하지만 ‘왜 난 금발로 염색하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을까?’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답은 뜻밖에도 편견으로 점철된 나의 모습을 마주한 뒤 얻을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가 유창하게 한국말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국어가 영어처럼 널리 쓰이는 언어가 아닌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난 그를 한국말을 어눌하게 할 외국인 노동자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단정 지었다. 결국, 나부터 나와 다른 색을 가진 이들을 낯선 이방인으로 여기고 배제했다. 그래서 나 또한, 독일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그들의 색에 나의 색을 부단히 끼워 맞추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단 이틀의 ‘금발’천하는 나에게 인종과 편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나라는 정말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리가족, 우리문화, 우리음식··· ‘우리’라는 말 속엔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동질감이 깃들여있다. 그러나 우리가 외치는 그 ‘우리’엔 과연 누구까지 속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가 유창한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차별과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비슷하게 생긴 외형의 사람들만 ‘우리’란 범주에 넣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We are the One" 을 외치며 하나 됨을 즐거워할 때, 그 속에 속하지 못한 채, 주위를 배회하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찬찬히 곱씹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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