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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프리 yefree May 22. 2022

엄마는 카페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딸과 엄마의 취향 빈부격차



시간이 허용하는 한 부산 여행을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단 것을 너무 좋아하는 나에게, 이곳의 모든 메뉴는 도장깨기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디저트들, 제철 과일을 활용한 신선한 계절메뉴, 이 순서로 먹어야 더 맛있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사장님의 자부심까지. 다른 사람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내 ‘최애’ 카페가 되어버렸다.



홍보 아니고 내돈내산!



마침 운이 좋게 엄마와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빨리 엄마도 내가 이곳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똑같이 느끼길 바랬다. 광안리라는 지명에 디저트 모양인 ‘알’을 합쳐 다양한 견과류를 맛볼 수 있는 ‘광알리’라는 메뉴를 주문했다. 1인 1 음료 원칙에 따라 ‘달달한 디저트엔 그 맛을 중화시켜줄 수 있는 쌉싸름한 아메리카노가 제격이지’ 란 생각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엄마는 무엇을 마실 건지 묻기 위해 뒤돌아봤다.




 순간,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쩔  몰라하던 난처한 표정의 엄마를 봤다.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무거나시켜달라 하곤 화장실  벽면으로  숨어있는 엄마를 봤다. 우리의 주문이 끝나길 기다리는  손님들, 카운터의 직원은 엄마의 취향을 대리 선택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커피가 싫으면 차를, 아니면 제일 만만한 아메를 선택하면   쉬운 ‘선택앞에서  엄마는 작아졌을까. 엄마가 아무거나에 만족하는  아니라, 단지 본인의 취향 선택에 따른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길 바랬을 뿐인데




나는 좋고 싫음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보다는 헤이즐넛 맛이 가미된 커피가 더 좋다. 발사믹 소스가 뿌려진 카프레제 샐러드보다 후추와 올리브 오일이 둘러진 카프레제가 더 좋다. 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식당에서 올리브 오일이 둘러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올리브유를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와 달리 ‘뾰족한취향을 가질  있었던  딱히 내가  감각적이고 호불호를 판별하는 예민함이  발달해서도 아니다. 다만 운이 좋게도  취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날카롭게 가다듬을 시간과 여유가 단지  있었을 뿐이다. 엄마는 내가 캠퍼스에서  번째 봄을 맞던 나이인 22살에 결혼해  남매를 키워냈다. 자식들이  좋아하는지 신경 쓰느라 정작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기쁨을 느끼는지와 같은 생각을  시간과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여유시간이 생긴 요즘의 엄마는 어릴   이룬 꿈인 그림을 열정적으로 그리신다. 가까운 것을 오래 보면 눈이 시리다하면서도 그림이 재밌고 즐겁다고 하신다. 수정하기 어려운 유화보단 실수해도 수정하기 쉽고, 색을 덧대어 다양한 느낌을   있는 수채화가  좋다고 하신다. 나는 엄마가 ‘취향  발견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새로운 취향이든 아니면 잊고 살았던 취향이든지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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