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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카페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딸과 엄마의 취향 빈부격차

by 예프리 yefree



시간이 허용하는 한 부산 여행을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단 것을 너무 좋아하는 나에게, 이곳의 모든 메뉴는 도장깨기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디저트들, 제철 과일을 활용한 신선한 계절메뉴, 이 순서로 먹어야 더 맛있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사장님의 자부심까지. 다른 사람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내 ‘최애’ 카페가 되어버렸다.



홍보 아니고 내돈내산!



마침 운이 좋게 엄마와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빨리 엄마도 내가 이곳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똑같이 느끼길 바랬다. 광안리라는 지명에 디저트 모양인 ‘알’을 합쳐 다양한 견과류를 맛볼 수 있는 ‘광알리’라는 메뉴를 주문했다. 1인 1 음료 원칙에 따라 ‘달달한 디저트엔 그 맛을 중화시켜줄 수 있는 쌉싸름한 아메리카노가 제격이지’ 란 생각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엄마는 무엇을 마실 건지 묻기 위해 뒤돌아봤다.




그 순간,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난처한 표정의 엄마를 봤다.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무거나’ 시켜달라 하곤 화장실 옆 벽면으로 가 숨어있는 엄마를 봤다. 우리의 주문이 끝나길 기다리는 뒷 손님들, 카운터의 직원은 엄마의 취향을 대리 선택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커피가 싫으면 차를, 아니면 제일 만만한 아메를 선택하면 될 이 쉬운 ‘선택’앞에서 왜 엄마는 작아졌을까. 엄마가 아무거나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단지 본인의 취향 선택에 따른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길 바랬을 뿐인데




나는 좋고 싫음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보다는 헤이즐넛 맛이 가미된 커피가 더 좋다. 발사믹 소스가 뿌려진 카프레제 샐러드보다 후추와 올리브 오일이 둘러진 카프레제가 더 좋다. 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식당에서 올리브 오일이 둘러진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올리브유를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와 달리 ‘뾰족한’ 취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딱히 내가 더 감각적이고 호불호를 판별하는 예민함이 더 발달해서도 아니다. 다만 운이 좋게도 내 취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날카롭게 가다듬을 시간과 여유가 단지 더 있었을 뿐이다. 엄마는 내가 캠퍼스에서 두 번째 봄을 맞던 나이인 22살에 결혼해 세 남매를 키워냈다. 자식들이 뭘 좋아하는지 신경 쓰느라 정작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기쁨을 느끼는지와 같은 생각을 할 시간과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여유시간이 생긴 요즘의 엄마는 어릴 적 못 이룬 꿈인 그림을 열정적으로 그리신다. 가까운 것을 오래 보면 눈이 시리다하면서도 그림이 재밌고 즐겁다고 하신다. 수정하기 어려운 유화보단 실수해도 수정하기 쉽고, 색을 덧대어 다양한 느낌을 낼 수 있는 수채화가 더 좋다고 하신다. 나는 엄마가 ‘취향’을 더 발견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새로운 취향이든 아니면 잊고 살았던 취향이든지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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