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배운 수영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던 날
'나한텐 그런 일 안 일어나겠지'라고 생각하며 넘기실 분들 꼭 끝까지 읽어보세요.
제가 그렇게 남 말 안 들었다가 머나먼 타국에서 물귀신 될 뻔했습니다.
우붓 마사지숍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내가 우붓 다음에 길리를 갈 거라고 하자 본인도 이전에 길리에서 거북이들과 바다 수영을 했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날 보며 하는 말 "너 구명조끼 입을 거야?"
이미 길리섬에선 충분히 얕은 곳에서도 거북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구명조끼 입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What? no.. it's not cool (구명조끼요? 에이 보기에 짜치잖아요)" 라면서 단박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너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다고 구명조끼 입는 게 좋을 거라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기도 거북이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너무나 깊은 곳까지 가서, 순간적으로 죽을 것 같아서 패닉 올 뻔했다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듣는데도 안전불감증이었던 나는 '뭐, 그럴 수 있겠지. 근데 깊은 곳까지 안 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아주 멍청한 생각을 했었다. (나한테 곧 닥칠 일도 모른 채)
게다가 바다에서 자유롭게 스노클링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사지샵 사장님이 해주었던 경고는 어느새 다 잊힌 지 오래였다. 그냥 빨리 들어가서 거북이랑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첫 자유 스노클링은 북쪽에 있는 터틀포인트에 가서 했었는데 (약 오후 1~2시경) 물이 많이 빠지기도 빠졌고 얕은 곳에서도 거북이들이 먹는 해초가 많이 자라서,
충분히 얕은 곳에서도 거북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물이 다리밖에 오지 않는 수심에서도 거북이를 완전 가깝게 볼 수 있다니, 완전 럭키비키잖아!
북쪽에서 자신감도 얻었겠다. 그다음 날은 또 다른 터틀포인트인 동쪽 와리조트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여기는 북쪽과 다르게 멀리서도 보이는 명확한 깊은 수심의 경계가 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오후에 가서 그런진 몰라도, 생각보다 거북이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
어쩌다 한 두 마리를 보고 쫓아가다 보니 동쪽바다가 생각보다 정말 정말 깊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얕을 거라고 생각하고 구명조끼나 오리발도 착용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러게 너가 왜 깊은 곳까지 갔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바다엔 조류라는 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해안가랑 저 멀리 떨어진 곳까지 떠내려갈 수 있다.
그렇게 조류와 거북이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바다 바닥을 보는데 너무 깊어진 걸 깨닫고 순간 무서워졌다.
그래서 고개를 내밀어 수면 위를 쳐다보니 이미 내가 해안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버렸고
내 주위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이 수영하던 서양인 커플이 있었는데..)
그래서 순간적으로 너무 무서워져서 빨리 해안가 쪽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틀어 수영하는 순간, 스노클링 마스크 호흡기 부분에 물이 찼다.
이럴 땐 푸! 하며 세게 뱉으면 물이 밖으로 빠진다는데 아무리 푸! 푸! 내뱉어도 물이 빠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1차 패닉이 시작되면서, 그럼 내가 잠깐 멈춰 서서 물을 빼내야겠다고 호흡기를 입에서 빼는 순간 뒤에서 파도가 내 머리를 덮쳤다.
순간 숨도 못 쉬겠고 머리가 새 하얘지면서 패닉이 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발은 땅에 안 닿지, 계속 파도는 빠르게 내 얼굴 위로까지 오지 1초도 숨을 제대로 못 쉬지
참고로 10년 넘게 수영했고 목 내놓고 수영을 할 줄 암에도 불구하고 그냥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이 하얘졌다.
진짜 나 이대로 여기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Help me!!!" 라면서 소리쳤던 것 같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내 목소리를 듣고 어떤 서양인 남성분께서 구하러 와주셨다. 그분 등에 매달려있는데도 호흡이 쉽사리 진정되지도 않고 너무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잠시 정신 차리고 그분 등을 잡고 같이 설 수 있는 해초깊이까지 갔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된 감사인사조차 못했던 것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원래 물을 너무 좋아해서 수영도 좋아하고, 물놀이도 좋아하고, 스노클링도 좋아한다.
한마디로 물공포증이 전혀 없어서,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을뻔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사실 크게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그렇구나. 공포스러웠겠다.' (끝)
그런데 내가 직접 물에 빠져 죽을뻔한 일을 겪고 나니 진짜 물 특히나 자연의 계곡과 바다 같은 곳이 정말 무서운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불과 몇 초 전만 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평화롭던 공간이 단 3초 만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생지옥으로 변한다는 거다.
난 아마 날 구해준 남성분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집에 와서 스노클링 하다가 사망한 사고들이 있었나 찾아보았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 기사들은 2018년인데, 최근에도 한 분이 안타깝게 고인이 된 것으로 알 고 있다.
스노클링 하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많은 이유가 '비교적 안전해 보여서'인 것 같다.
프리다이빙이든 스쿠버다이빙이든 조심해야 하는 스포츠니, 안전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얕은 곳에서 스노클링 마스크 하나만 가지고 둥둥 뜨는 스노클링은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한다.
이 일 이후로 누사페니다 스노클링 하는 것도 솔직히 많이 망설였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그 파도가 넘실거리면서 물에 빠지던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면서 물공포증이 거의 생길뻔했다ㅠㅠ..
그래도 예약을 미룰 수가 없어서 갔지만 무. 조. 건 구명조끼 입고 그냥 가이드 선생님 옆에만 졸졸 따라다녔다.
길리 가는 한국인들이 많은데 바다수영 못하면 제발 구명조끼 입으시는 걸 추천한다. 아니면 최소한 오리발이라도 해야 바다에서 곧게 서서 버틸 수 있다.
* 간혹 아무 구명조끼랑 오리발 없이 수영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내가 봤을 때 서양인들은 기본적으로 수영이랑 잠수를 정말 잘하는 고수들이었다.
참 웃긴 얘기지만 저렇게 죽을 뻔한 사건 이후로 느낀 게 있었다.
난 참 오랫동안 '삶의 의미'에 대해서 찾고 방황했었는데
저 일을 겪은 후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정말 필요한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우리가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 멀쩡하게 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따로 찾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낭만에 빠진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근거 없는 낙관론을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음)
돈을 잘 벌든, 적게 벌든
외모가 출중하든, 못났듯
날씬하든, 통통하던지간에 상관없이
그냥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니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