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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프리 yefree Jun 25. 2022

아이슬란드 하늘을 내 맘대로 끄고 켤 수 있다면

아이슬란드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로라를 찍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는 사진작가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로라는 강도에 따라 Kp 0 ~ 9까지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 그 작가에게 초심자의 행운이 깃들었던 것인지, 처음 본 오로라가 제일 높은 강도의 9였다고 한다. 그 광경이 너무 경이로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매료된 나는 버킷리스트에 ‘오로라 보기’를 부동의 1순위로 추가하였다.


마침 친구가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가자고 하였고, 그 초록 커튼을 보겠다는 일념 하에 만반의 준비를 해서 떠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물그릇을 떠다 빌어도 꿈쩍 않을 것 같은 무겁고 짙은 먹구름만이 날 반겨주었다. 오로라가 하늘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구름에 가려지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수 없다. 4박 5일 동안 내내 날씨가 흐린 탓에, 오로라는 커녕 햇빛이 부족해 비타민D가 급속히 줄어들 지경이었다.


오로라를  보고 말겠다는 집착은 점점 나를 괴롭게 하는 '올무'처럼 변해갔다.   오기도 힘든 나라에서 오로라를  보고 이대로 영영 돌아갈  있다는데, 나만큼 오로라에 열정적이지 않은 친구들의 태도에 못난 심보가 툴툴 나왔다. 속이 상해 친구들 얘기를 듣는  마는  하다가  이상 표정관리를   없을  같아 조용히 방에 들어왔다.


혹시나 늦게라도 구름이 걷히어 오로라를 볼 수 있진 않을까 하는 미련을 가지고,  계속 날씨 어플을 새로고침 했다. 오로라 정보를 공유해주는 여행 카페에도 오로라를 보았다는 새로운 글이 뜨진 않을까, 실낱 같이 희미한 희망을 찾아 간절히 맴돌고 또 맴돌았다.


그때 용수철처럼 내 몸을 튀어 오르게 한 글을 보았다. 딱 10분 전, 내가 있는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구름이 걷히어 오로라를 봤다는 글이었다. 밤 10시를 막 넘긴 시각. 혼자서 40분 거리를 걸어서라도 꼭 오로라를 보겠다는 의지에 사로 잡혀 부랴부랴 옷을 챙겨입었다. 다시 한번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려 글을 보는데 순간 내가 놓쳤던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이틀 전에 같은 시각에 쓰인 글이었다.


인간은 계속해서 절망적인 상황보다,   희망을 맛보았다가 좌초됐을    절망감과 상실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렇게 죽상을 하고  밖만 멍하니 바라보는데, 나의 룸메였던 일본인 친구 에리가 방에 들어왔다. 하늘보다  잿빛 같은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냐 물었다. 오로라 보는  소원이었는데 그러질 못해 너무 슬프다고 답했다. 다음에  오면 되지 않느냐는 위로에도 꿈쩍 않는  보며 말했다.



만약 자연이 TV 스위치마냥 쉽게 끄고 켤 수 있는거였다면, 이만큼 안 아름다울거라고.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기에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배가 되는것 같아.


그 말을 듣는데 속이 상해 쓰렸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오로라를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있다면,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기쁨과 환희만 못할 것이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이리도 애가 타고 간절히 원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다음에 아이슬란드에 한번 더 올 핑계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에리의 말에, 아쉬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그 크기를 줄일 순 있었다.


하고 싶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아이슬란드 여행은  가르침을 주었다. 아무리 원해도 절대 인간이 '어찌할  없는  분명 존재한다는 . 지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다음을 기약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


핀란드인들을 오로라를 밤하늘을 따라 종종 걷는 북극여우의 꼬리 같다 하였고,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조상들이 하늘에 모닥불을 피운  같다고 비유했다. 그럼 나는 오로라를 어떻게 나만의 언어로 명명할 것인지 즐겁게 상상하며, 다음에 마주하게될 오로라를 기다리려 한다.



얼음동굴 투어 하던 날.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았던 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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