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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프리 yefree Jul 30. 2022

스위스 기차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

가장 효과적인 습관 형성 방법


요즘 서점에선 ‘습관’과 관련한 베스트셀러 책들이 많이 보인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지속하는 힘, 습관의 완성 등.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수적천석이란 말도 있지 않나.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는 뜻으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오랜 기간 쌓이면 그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한 발짝, 두 발짝 느리지만 꾸준히 습관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좋다. 하지만 충격요법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스위스 기차가 내게 그랬다.


유럽여행에서 어이없는 작은 실수들로 교통편을 놓치기 일쑤였던 나는 스위스에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 다짐했다. 오후 1시 기차를 놓칠세라 30분 전에 미리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시 5분전, 기차가 들어오더니 역에 멈췄다. 또 놓칠세라 잽싸게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척척 들어맞는 이 기분!


그런데 기차는 1시가 아닌 12시 57분에 출발했다. ‘응? 뭐지?’ 뭐, 우리나라에서도 가끔씩 몇 분 빨리 출발하곤 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속도가 야속할 만큼, 창 밖에 펼쳐진 스위스의 풍경은 가히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알프스 하이디 소녀가 금방이라도 뛰어놀 것 같은 푸른 들판. 수채화 물감을 푼 듯한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Photo by Dorothea OLDANI on Unsplash


그런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완벽하니 오히려 불안했다. 이렇게 날씨와 풍경이 도와주는데 나의 불안감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마치 햇빛이 너무 좋아 쌓였던 옷들을 세탁하고 마당에 주름 하나 없이 널어놓았는데, 저 멀리서 빗방울을 가득 머금은 먹구름이 빠르게 다가오는 기분이랄까?


그때부터 기차 안을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지만, 여기가 한국 지하철도 아니고 내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의 불안함을 읽은 한 남자가 무슨 일이냐 물었다. 표를 보여주며 이 기차가 맞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날 보더니 이 기차가 아니라 다음에 오는 것을 탔어야 했다고 답했다. 순간 발 밑으로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 한국에선 출발하기 15분 전에도 승강장에 기차가 멈춰있으니, 5분 전에 도착한 스위스 기차도 비슷할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 기차 속도가 야속했다. 되돌아가기 힘드니까 천천히 달려주겠니?


결국 다음 역에 내려 값비싼 스위스 기차표를 다시 끊고, 비엔나 소세지마냥 줄줄이 예정되어있던 계획도 취소했다. 누굴 탓할 수도 없고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나네? 이후로 나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확인 강박증’이 생겼다. 보고 또 보고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원래는 덜렁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허술했지만, 이젠 꽤나 피곤할 정도로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걸 좋아해야 돼 말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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