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월 1,000만 원, 구글이 앗아간 두 번째

남의 땅에 지은 집은 내 집이 아니다

by 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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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잠시 취직 전으로 돌아가보자. 스물아홉, 나는 다시 양복을 입은 직장인이 되었지만 그전에 말하고 싶은 사례가 하나 있다.


산전수전 겪으며 내 몸에 체득된 '마케팅 감각'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이 기술을 살려보고 싶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타겟은 바로 구글의 광고 플랫폼, '애드센스(AdSense)'였다. 당시 나는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했다.


남들처럼 맛집이나 여행 일기를 쓰는 취미용 블로그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수익을 목적으로 설계된 '수익형 블로그'였다. 마케팅 대행사를 하며 익힌 키워드 분석 능력, 대중의 심리를 파고드는 카피라이팅 기술을 쏟아부었다.


사람들은 어떤 정보를 찾고 싶어 하는지, 어디를 클릭하고 싶어 하는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퇴근 후 2~3시간씩 글을 쓰고, 링크를 분석하고, 트래픽을 유도했다. 첫 달 몇만 원으로 시작했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00만 원, 300만 원, 500만 원...


그리고 마침내, 월 1,000만 원. 직장 월급의 3배가 넘는 돈이 '달러'로 찍히는 순간, 나는 쾌재를 불렀다. "됐다! 드디어 찾았다!" 코인처럼 변동성이 심하지도 않았고, 다단계처럼 사람을 모으러 다닐 필요도 없었다. 오직 내 글쓰기 실력과 마케팅 기술로 만든 순수한 수익.


나는 다시 한번 '경제적 자유'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2019년 어느 날, 그 꿈은 단 하루 만에 산산조각 났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애드센스 앱을 켰는데, 수익 그래프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0.01 오류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그대로였다. 알고 보니 구글의 '정책 변경'이 원인이었다. 당시 고수익을 내던 '링크 광고' 형식이 전면 폐지되었고, 외부 유입 트래픽에 대한 제재가 강화된다는 공지가 떴다.

하루아침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밤새 로직을 분석하고, 글을 수정하고, 별짓을 다 해봤다. 하지만 거대한 공룡 구글이 "너 안 돼"라고 손가락을 튕기자, 개미인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수익은 1,0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다음 달엔 150만 원으로, 그리고 결국 0원으로 수직 낙하했다.


진짜 세상이 나를 억까 하는 것 같았다. 이 수익은 각별했다. 스터디를 주최하여 모임장이 되보기도 했고, 온갖 마케팅 기술을 쏟아부어 만든 수익이기도 했다. 내 실력이 부정받는 느낌이였다.


경제적자유란 있기나 하는걸까? 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마치 2,000원짜리 코인이 200원이 되었던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나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이건 '내 사업'이 아니었다. 나는 구글이라는 거대한 땅주인의 땅에, 허락도 없이 판잣집을 짓고 월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땅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꼼짝없이 쫓겨나야 하는 세입자 신세.

"수익의 핸들링이 내가 아니라 남(플랫폼)에게 넘어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S사 퇴사, 코인 폭락, 코로나 폐업, 그리고 애드센스 정책 변경. 내 20대는 실패의 연속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남이 만들어둔 시스템에 기생하지 마라. 네가 통제할 수 있는 너만의 시스템을 만들어라.'


애드센스 수익이 0원이 되자, 주변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고 회사나 열심히 다니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내 안의 독기는 오히려 더 진해졌다. '그래? 플랫폼이 문제라고? 그럼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는, 진짜 내 실력으로 승부 보는 일을 찾겠다.'


나는 언젠가 다시 일어날 것을 기리며 독기를 품었다.




회사는 나에게 '베이스캠프'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나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코로나로 사업을 접고, 사기를 당하며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회복하기에 직장만큼 좋은 요양원은 없었다. 업무는 익숙했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완벽하게 사회에 적응한 듯했다.


그렇게 1년을 현실에 안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1년이 지난 시간동안 트렌드는 빠르게 변했다. 나는 그동안 놓친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모은 돈으로 마케팅 공부에 다시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0년 3월 나는 현재 와이프와 결혼했다. 취직하고 6개월 동안 빠르게 2천만원을 다시 모았다. 내가 이런 시련을 겪는 동안에도 놓지 않은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주식 투자였다. 주식+마케팅 강의 수익으로 전세 보증금 정도는 빠르게 마련할 수 있었다. (나머진 전부 대출이다)


그리고 8월 첫째가 태어났다. 난 현재 상황이 힘들다고 하여 아이 낳는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노력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였다.


난 그동안 지치기도 했던 것 같다. 회사를 지금까지도 다니고 있다. 벌써 5년차다. 그리고 이 5년안에도 수 많은 희노애락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퇴근 후 다른 사람이다.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하지만 2020년 당시 그 무렵,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가장 슬픈 시련이 예고도 없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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