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어려운 건 원래 어렵게 하는 거다." 나의 모토는 육아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둘째가 태어나고, 곧이어 셋째까지 찾아왔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건, 내 시간과 체력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새벽에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고,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퇴근해서 다시 육아 전쟁에 투입되는 나날들.'경제적 자유'고 나발이고, 당장 4시간만이라도 푹 자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실행력은 바닥을 쳤고, 나는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열심히 살았잖아. 대기업도 다녀봤고, 월 천만 원도 벌어봤고... 이제 그냥 적당히 회사 다니면서 애들 키우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통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늘어나는 식구 수만큼 불어나는 생활비, 외벌이, 노후준비 등.. 현금 흐름이 꽉 막히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번듯한 직장인이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당장 숨통을 틔울 '현금'이 필요했다.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엔 내 자존심이자 유일한 사치였던 K8이 있었다. K8은 둘째가 태어나고 20대초에 대학을 다니기 위해 샀던 아반떼를 팔고 돈을 보태 산 차였다. 10년 이상을 일만해온 자신에게 이정도는 선물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에 구매한 차다.
아버지의 마지막도 이차로 이동했다. 추억이 많고 나의 자부심 이였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다. 익숙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이 차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할부금과 기름값, 세금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팔자.'
결심은 빨랐지만, 실행은 쓰라렸다.
차를 딜러에게 넘기고 내 손에 쥐어진 건, 빚을 갚고 남은 몇백만 원과 낡은 경차 '쉐보레 스파크' 한 대였다. 이 쉐보레 스파크는 아버지가 타던 차였다. 어머니가 운전을 배워 끌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아버지가 탔던 차는 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동생도 차를 새로 뽑았기에 결국 그차는 내가 가지고 오게 되었다. K8을 타던 손으로 스파크의 얇은 플라스틱 핸들을 잡았을 때의 그 묘한 기분. 차는 외부며 내부며 아버지의 흔적으로 가득 찼다. 아버지도 운전을 썩 잘하신건 아니였다.
차에는 여기저기 긁힌 자국과 찌그러진 자국들이 있었고, 내가 처음 가져왔을 땐 수리비가 80만원이 넘도록 한번 수리해서 탔어야 했다. 어느날은 차안에서 펑펑 울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궁금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되뇌었다.
예전엔 몰랐지만 요새 나는 힘든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가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었다.
도로에 나가니 버스 바퀴가 내 눈높이 옆에서 굴러갔다. 언덕을 오를 때면 차가 힘겨워하는 소리를 냈다. K8을 타가다 스파크를 타려니 이상하게 멀미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편안한 마음이 있었다. 완전히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생각은 뒷좌석에 탄 아이들 덕분에 곧 산산조각 난다. 좁디좁은 경차 뒷좌석에 카시트를 구겨 넣고 아이들을 태운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도 멀미를 느낄까봐 최대한 조심조심 운전했고, 왜 아빠 차가 작아 졌냐고 할까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였다.
"우와! 아빠 차 빠르다! 붕붕!"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차가 작든 크든, 브랜드가 무엇이든 아이들에겐 상관없었다. 그저 아빠와 함께 어디론가 간다는 사실만이 즐거울 뿐이었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 혹시 겉멋 든건가..? 너 정신 안차릴래?' 스스로 그렇게 되뇌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폼 잡는 아빠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아빠'였다. 힘들다고 시간 없다고 현실하고 타협하는 건 내가 아니다. 하고 싶은건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그만큼 노력하면 된다. '어려운건 어렵게 하면 된다'
그날 이후, 스파크는 더이상 나의 신경을 건들지 못했다. 난 목표를 하나 세웠다. 바로 카니발 하이브리드로 바꾸기로 말이다.
현실에 더이상 안주하지 않겠다. 나는 바로 집에가서 수익화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셋째는 25년 5월에 태어난다. 때는 24년 10월이였다.
나는 이렇게 메모하고 주변에 선언하며 의지를 다진다. 우선 차를 판 돈으로 급한 불을 끄고 나니, 통장에 다시 여유가 생겼고 마음에도 틈이 생겼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이들을 생각하니 없던 힘이 절로 생겼다. 당시 나에겐 보증금, 주식투자, 조그만 퇴직금을 합쳐 1억정도 있었다.
과거의 영광, 헛된 자존심, 남들의 시선. 스파크를 타면서 나는 이 무거운 짐들을 하나씩 차 밖으로 던져버렸다. 가벼워졌다. 그리고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가야 할 길, 그리고 미뤄두었던 숙제들이.
"여보, 나 다시 해볼게. 이번엔 진짜 제대로."
나의 목표는 내집 마련과 카니발 하이브리드를 사는 것, 기한은 셋째가 태어나기 25년 5월 전까지다.
우리 아이들이 각자의 방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큰 평수를 알아보았고 47평집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차를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보는 내 마음이 구겨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니발이다.
목표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1억 5천, 앞으로 5천만원을 외벌이 월급으로 7개월안에 벌어야 한다. 육아에 지쳐 바닥을 기던 나의 실행력이, 낡은 경차 엔진 소리와 함께 다시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새벽 3시의 알람을 다시 맞췄다. 이제 진짜 '각성'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