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를 잡지 못하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는 무언가 잃은 느낌이 많이 들었따. 예전의 나는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을 쌓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즉, 건강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묵묵히 일을 했고, 퇴근 후에는 보험 약관을 파고들었다. "이 특약은 왜 넣었지? 이 담보는 무슨 함정이 있지?" 보험 공부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마지막 숙제이자,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방패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보험을 리모델링해주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장이 된 내 어깨에는 아내와 두 아이(당시 둘째 임신 중), 그리고 홀로 남으신 어머니의 노후까지 얹혀 있었다. 직장 월급만으로는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다시 '공격(수익화)'을 해야 했다.
이제는 부업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부업으로 시작하더라도 본업으로 바뀔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명품 수선&리셀, 홈페이지 제작, 렌탈사업 등.. 월 천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이색 투잡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N잡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전부 마케팅이 중요한 업종만 골라서 한 것 같다. 그도 그럴게 가장 자신있었고 이전 수강생분들도 강의 다시 해주냐며 찾아주시기도 한게 컸다. 그렇게 나는 다시 마케팅 시장을 기웃거렸다. 과거에 대행사를 운영했던 경험, 애드센스 월 1,000만 원을 찍었던 감각은 잊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하지 않고, '시스템'을 가진 상태에서 진행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내 생각과 딱 맞는 곳이 있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시스템에 의존한다라는 말은 결국 남의 손을 빌린다는 의미와 같다) "저희가 다 알아서 해드립니다. 시스템이 완벽해요. 대표님은 영업만 하세요." 한 마케팅 대행사의 제안은 달콤했다.
실제 서비스는 너무나 간결했다. 사람들이 내 대행사 홈페이지에 들어와 요금을 충전하고 원하는 상품을 결재하면 자동으로 회사에서 마케팅을 실행해 주었다. 그런데 어떤 특정 상품들은 내가 직접 실행사 업체와 소통하면서 조율하는 중간역할을 하기도 해야했다.
여기서부터 완전 자동화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의아해 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그들의 말은 교묘했고 틀린말은 없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불화가 싫었다. 나는 이전 기억이 떠올랐다. S사 퇴사 때 느꼈던 '부품'의 느낌, 애드센스 때 겪었던 '플랫폼의 노예'가 된 느낌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당하고 나는 또 남에게 의지하려고 하다니.. 아직 멀었구나.."
어느 날 새벽 3시, 곤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까지 남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 할 것인가?" 자꾸 남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설계사를 맹신하면 깡통 보험을 들게 되고, 대행사를 맹신하면 호구가 된다. 결국 '핵심 기술'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나는 평생 누군가의 들러리만 서다가 끝날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대행사와의 계약을 정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직접 한다. 내가 데이터를 뽑고, 내가 프로그램을 돌린다." 하지만 코딩의 'ㅋ'자도 모르는 내가 프로그램을 짠다고?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10여 년 전, 한양공고 실습실에서 밤새 기계 도면을 그리던 19살의 나. "어려운 건 원래 어렵게 하는 거다."
그래, 코딩이라고 못 짤까. 나는 주변에 코딩하는 친구들의 도움을 빌려 파이썬(Python) 책을 샀다. 그리고 유튜브를 뒤지며 '업무 자동화', '크롤링' 같은 낯선 단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얼마가지 못했다.
둘쨰가 태어났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 셋째가 태어나고 6개월이 되었다.
지치기도 지쳤던것 같다. 중간중간 맘먹고 부수입을 만들기 위해 육아휴직까지 사용해가며 병행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육아를 하니 새벽에 잠을 못자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을 돌보는건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실행력도 바닥을 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