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도 눈이 일찍 떠졌다. 다만 전 날 일정 중 가장 술을 많이 먹은 날이라 조금은 머리가 아팠다. 일어나서 씻고 짐을 미리 챙겨보는데 귀국하는 날 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머문 방문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호텔 복도에서는 요양백탑이 보였다. 요양백탑과 드넓은 평지에 세워진 아파트들의 광경은 꽤나 절경이었다. 특히 산이 전혀 보이지 않고 평지만 보이니 정말 요동에 왔다는게 사뭇 또 체감 됬다.
마지막 호텔 조식도 훌룡했다. 특히 양은 적지만 국수가 있었는데 국물이 되게 내 입맛에 맞았다. 술을 먹었기에 더 맛있을수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정말 맛있었다.
요양백탑이 상당히 커서 둘러보기만 하고 사진은 많이 찍지 않았다. 아무리 찍어봤자 호텔에서 찍은것보다 못할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때문이다.
이 요양백탑 공원이 상당히 잘꾸며졌다. 사실 난 요동성 해자만 볼 생각에 흥분됬지만 이 상황을 회고하면 이 날 공원도 참 분위기가 좋았다.
걷다보니 공원에 나와 다리를 하나 건너고 있었다. 개천인가 싶었는데 인공적으로 만든 해자라고 한다. 즉 내가 보려한 요동성 해자 다. 폭이 상당히 크다. 이 해자를 보니 그렇게 책에서 봤던 요동성에 왔다는게 체감되서 신이 났다.
해자를 넘어온 여기가 과거 요동성이 있을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정말 안타깝게 일말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다. 작은 돌무더기 조차 온대간대 없고 현대 중국의 모습만 존재할뿐이다. 특히 황룡사지 같은 느낌이라도 기대하고 오신분들이 많이 안타까워 하셨다.
고구려가 요동성을 쌓은건 아니다. 요동 이라는 땅 자체가 전국시대 연-중국왕조-공손씨 세력-5호16국시대 등 여러세력이 차지했더나 곳이다. 그리고 마침내 고구려 광개토태왕때 차지하며 요동일대는 고구려가 멸망할때까지 고구려의 강역이 된다.
고구려가 건국되고 꽤나 나중에 요동을 차지했음에도 완고하게 영역화 하는데 성공해 요동이 고구려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고, 고구려가 멸망하고도 이 곳에 있던 요동성과 이어서 보러 가는 백암성등 요동의 여러 성들이 당에게 저항을 한다. 비록 성은 남아 있지 않아도 고구려의 철옹성인 요동성이 있던 곳으로 왔으니 만족한다.
원래 가기로 한 벽화박물관이 개장을 하지 않아 바로 옆에 있던 요양박물관에 왔다. 처음에 규모가 굉장히 큰 요녕성박물관가 헷갈려 그곳을 40분만에 보는게 가능할까?라고 잠깐 생각했다.
이곳은 요양 일대 그러니까 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있던 역사를 중점을 둔 박물관이다. 역사 서술에서 속인주의적 시작에 익숙한 나 로서는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진 곳이었다. 속지주의적 역사서술도 당연히 존중받야하나 중국에서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같은 황당한 서술이 나와 색안경을 끼게 보게 된다.
용만소장님이 호자를 보고 그다지 호랑이 같지는 않죠? 라고 말하던 차 "자 사학과! 이거 용도는!" 하고 물어보셔서 웃음이 크게 터질뻔 했다. 다행히도 요강으로 쓰이는 용도를 알고 있어서 틀리는 망신은 없었다.
인터넷에 요동성을 검색하면 이 성곽복원도가 주로 나온다. 인터넷에서 정말 많이 본 이미지인데 여기 요양박물관에 전시중인 복원도였다. 전혀 예상도 못했는데 이게 전시중이라 놀랬다. 그저 국내 박물관일줄 알았는데 중국에 박물관일줄이야. 다만 단순 복원도라 해자까지는 복원해놓지는 않았다.
당태종이 저렇게 폼 잡고 있는 요양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니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당태종이 요동에 왔을때 저렇게 폼잡았다고? 나중에 도망가기 바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너무나 들었다. 이제와서 기억해보면 "발해"를 제대로 된 국가 취급도 하지 않고 있다. 당시 엄연히 존재한 국가임에도 고구려와 다르게 아예 대우조차 해주지 않는 점에서 상당히 황당한 전시였다.
11세기 요동은 물론 북중국일대를 장악한 거란의 지도다. 저런 지도는 수없이 봐서 익숙하다. 그런데 거란의 영토를 간접지배를 제외하고 실질적 지배 영토만 제시하면 저것보다 훨씬 작을거라는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들었다. 오...그럼 저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 급격히 줄어들듯하다.
조선인처럼 보이지만 여진족을 그린 모습이라고 한다. 이 그림을 보다가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왔다. 황급하게 화장실로 찾아야하는데 1층에서 잠시 길을 헤맸다. 심지어는 화장실을 찾았음에도 휴지가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일행분들이 휴지를 줘서 망정이지, 정말 정말 큰일 날뻔했다.
화장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겨우 나온뒤 다시 관람을 했다. 아까 관람하던 곳과 다른 곳으로 들어와 여기가 어딘가 싶었는데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시관이다. 내가 사진 찍은 저 동상 역시 전국시대 중국의 병사일것이다. 아마 요동을 차지한 연나라 병사가 아닐지. 이상하게 저런 투구를 우리나라 사극에서 당나라군이 주로 쓰고 나온다. 한국사극 제작진들에게 저 투구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관람을 끝내고 5박6일간의 답사 마무리 일정인 백암성으로 떠났다. 백암성까지는 25분정도가 걸렸던거 같았다. 마지막 일정이라 아쉬운 마음이 들어 창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잠들었을때, 바로 가이드님이 내려야한다고 깨웠다.
백암성도 상당히 외진 곳에 있었다. 중국어 간판만 치운다면 우리나라 평범한 시골과 다를게 없어보였다. 백암성으로 올라갈려던 찰나, 입구가 막아져 있다. 답사 이틀째 날 자안산성을 보지 못한게 생각이 나 설마..백암성 조차 못보는것인가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와중에 이 근처에 사는 현지인 할머니가 우리 일행을 보고 큰 소리로 떠드셨다. 느낌이 좋지 않아 아 공안에게 신고하실거라고 생각했다. 바로 입구에서 백암성을 보지 못하고 공항을 가야하는거 같아서 안타까워 할즘 중국어를 하실줄 아는 몇몇분들이 말이 굉장히 빨라서 그렇지 공안에 신고한다, 나가라 이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하셨다. 희망을 품을때 쯤 가이드님이 올라온 뒤 그 할머니와 말을 나누더니 웃으시면서 입을 열었다.
"이 쪽 입구가 막혔으니까 저 옆에 작은길 따라 올라가면 그대로 백암성이 나온다고 합니다. 옆으로 가시죠 "
이 말을 듣고 곧 바로 근심걱정이 싹 내려갔다.
옆에 길이 매우 좁아 조금은 불편했지만? 그래도 백암성을 볼 생각에 매우 신이났다.
길을 따라 올라가보니 우거진 나무 사이로 백암성의 성벽이 나를 맞이 했다.
뻑뻑한 나무를 헤치고 나오니 고구려 성벽이 쭉 늘어져 있다. 대부분 나무 사이에서 보고 위로 올라 다른 성벽을 보러 가셨는데 나는 너무 신난 나머지, 나무를 뚫고 내려가서 성벽을 쓱 보고 왔다.
과거에는 저 너머로도 성벽을 보거나 올라갈수 있다는데 더 이상 출입이 허용되지가 않는게 아쉬웠다.
다시 일행과 합류하여 성안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경사가 높아 약간 숨이 찼지만 고구려 요동방어선의 성벽이 이렇게 잘 남아 있는것에 신이나서 열심히 달려갔다.
겉면에 있는 돌이 떨어졌지만 그걸로 인해 고구려 성벽인게 절실히 들어나는 아이러니.
저 앞에 태자하가 흐른다.
태자하는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허접한 cg로 등장해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강이다. 길이길이 비웃음 대상이 되는 이 강을 실물로 보게 될줄은 몰랐다. 실제로 흐르는 태자하를 보니까 비현실적인 느낌이 조금은 들었다. 드라마에 나온 어색한 cg를 검색해 다시 보고 실제 태자하를 보니 왠지 말문이 막혔다. 저 곳에서 고구려 병사들이 자신과 말이 물을 먹었을까 하는 상상이 든다.
가까이 오지말라는 팻말이 있었지만 공안도 없었기에 가까이에서 성벽을 보았다. 1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벽이 남아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 성벽을 그대로 따라 최대한 높은 곳에서 요동벌판을 바라 보았다.
넓은 저 요동벌판..왼 쪽에는 태자하가 흐르는 저 광할한 영토를 보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곳에도 산이 없는건 아니고 요양시도 드넓은 평야였지만 고구려 하면 생각나는 만주벌판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듯했다. 이 요동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군은 수많은 전투가 치렀다. 요동을 차지한 후에도 고구려는 요동에 국한되지 않았다. 태자하를 넘고 요하를 넘어, 요서의 여러 세력을 제압하려 출병했다.
그런 역사를 알고 저 땅을 바라보니 느낌이 남달랐다. 이제껏 말로만 고구려의 영광, 천하관을 배웠던 내가 좀 우스웠다. 이 곳에서 비로소 나는 진정한 고구려를 체험하였다.
이제 올라온 곳에서 내려가 백암성의 절정 치,를 볼떄가 왔다. 국내성에서 충분히 치를 많이 보긴했으나 수도의 방어시설과 최전방의 방어시설은 현격히 차이가 날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미 사진을 봐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실물은 처음이니 기대가 부풀었다.
성안에서 나와 성밖에서 보니 백암성의 치가 보인다. 국내성에서 본 치 보다 훨씬 크다. 과연 고구려 최전방에 위치한 성 답다.
무눠짐을 방지하기위해 구조물을 설치했는데 사다리 차 처럼 보였다. 미관상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것 같지만 나 로서는 전쟁을 하는것 처럼 보여서 괜찮았다.
성벽을 찍고 한참을 감탄하며 봤다. 저 정도 축성능력은 되니까 수십만 대군을 막아낸걸까? 백암성이 이정도면 요동성,신성 등 대규모 성은 얼마나 거대했을까? 감히 상상이 안된다. 나무와 풀이 우거져 접근하기 힘들지만 일부러 좀 고생을 해 성벽 가까이에 최대한 접근해봤다.
성벽 바로 앞으로 와보니까 고구려 성벽 양식인 굽도리 축조방식이 잘 들어나 있다. 지난 학기때 고고학 수업때 본 자료를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기분이 심숭생숭 했다. 과연 그 수업을 들은 학생 중 누가 여기까지 와봤을까.
여기서 더 위로 올라가려 하니 철조망이 더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철조망이 없더라도 더 올라가기엔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있어서 접근할수도 없었다. 이제 좀 옆으로 가서 성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려고할때 숨겨진 철조망에 발목이 긁혔다. 피가 좀 났었는데 피가 좀 나면 어떤가, 여기서 돌궐군, 당군을 막아낸 고구려군에 비하면 비할건 아니지 않은가.
성벽을 전반적으로 보는데 너무 풀과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서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가까이서 찍으면 전체적인 모습이 안나오고 멀리서 찍으니 나무에 가려진 곳이 많다.
답사 전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서 본 모습은 이러했다. 내가 갔을때는 나무가 너무 울창해서 일부가 가려지거나 이동하는데 제약이 존재한건 아쉬웠다.
백암성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어주시는 분이 고맙게도 다리가 길게 찍어주셨는데 내가 굳이 다리를 많이 벌리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키가 그렇게 커보이지 않게됬다. 그럼에도 뒤에 백암성이 잘나왔으니 만족한다.
이 곳에서 고당전쟁 당시 백암성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일행분들과 나눴다. 당군이 공격중이었는데 당시 고돌발이 데려온 고구려 지원군을 타격하기 위해 당나라 최고 맹장인 계필하력에게 기병을 맡겨 싸우게 했다. 당나라 최고 맹장과 정예기병이 고구려 기병과들판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고구려군의 압도적인 승리, 당군에서 가장 막강한 기병전력인 돌궐기병이 무참히 박살나고 그들을 이끈 계필하력이 창에 찔려 부상을 당했다. 이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전투가 벌어진줄은 몰랐다고 이야기 하면서 재밌게 대화 했다. 성벽 밖에서 본 요동벌판, 저 곳에서 계필하력의 부대가 고돌발에게 박살이 났을까?
사진을 찍으면서 나무가 상당히 우거져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국 사진을 많이 포기하고 눈으로 많이 찾아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을 다시 찍어도 내 눈으로 본 웅장함을 사진에는 10분의 1만큼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일정의 마무리 시간이 다가와 아쉬움을 남기고 입구로 내려갔다.
주변 민가에서 백암성 성벽에서 가져와 벽을 쌓은게 너무 많이 보였다. 싸그리 철거하고 성벽을 보수했으면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잠시 들었다.
식사는 백암성 바로 아래에 있는 식당에 가서 했다.
아까 박물관에서 배가 아파서 술은 먹지 않았는데 이 날 점심 식사 역시 굉장히 맛있었다. 중국 음식이 상당히 입에 맞지 않을거라는 모 후배의 말이 무색하게 열심히 먹다 못해 밥 정말 여러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일부러 한국인 입맛에 맞는걸로만 시킨거겠지만 그럼에도 너무 맛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아쉬움을 남긴채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멀리서 백암성이 보인다고 해서 사진을 찍을 분들만 내려서 보라고 했다. 아쉬움이 너무 많던 나는 바로 내렸다.
멀리서 보니 아까 본 백암성 전체 모습이 보인다다. 괜히 저 성에 누각이 있고 병사들이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아까까지 내가 있던 곳이 돌궐의 침략을 막고, 당태종과 치열하게 싸운 고구려군들이 바로 저곳에 있었던 곳이라니.
"이제 이 곳을 떠나야하는데..정말이지 지금 떠나면 또 언제 올수 있을까. 내가 역사를 전업으로 한다면 올수 있을까? 내가? 어쩌면 백암성을 보는건 이게 마지막일수 있지 않을까" 등 별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차 길에 버스를 오랫동안 세워둘수도 없고 정말 떠날 시간이 찾아왔다.
어릴적 대하드라마 대조영을 보고 키운 고구려에 대한 환상이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왔다. 그 고구려를 영역화한 땅을 밟고 그곳의 공기를 들이 마셨으니 후회는 없다.내 앞에 있는 저 곳이 무눠진 성벽에 불과하지만 나는 저 백암성을 향해 묵념하듯 고개를 한번 숙였다. 마치 묵념하듯 숙이며 나로서는 고구려에 대한 인사를 드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혹자가 이미 멸망하고 흔적밖에 없는 나라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일을 한다는 냉소를 보일수 있겠지만 나 로서는 그저 고구려인들의 흔적, 혹은 고구려의 강역 안에서 이런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추모왕이 세운 이 고구려에 대해 드라마,책등을 보면서 한 어린이가 커서 현재의 내가 된거니까. 나 로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표시를 하고 이 감정과 기억을 품은채 천천히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백암성에서 뒤로 하고 걺음을 옮길때 다시 한번 드넓은 평야로 고개를 돌렸다. 때 마침 바람이 불었고 드넓은 벌판은 여전히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땅도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는듯 했다.
그리고 3시정도였을까, 선양공항에 도착해 집을 맡기고 출국을 기다렸다. 인천공항보다 훨씬 한가했기에 신속하게 일처리가 됬고 5박6일과 함께한 가이드님과도 인사를 나누며 작별했다.
가자 한국으로광주까지 언제 내려가냐 하는 막막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비행기를 타기전까지 시간이 넉넉해 뭐라도 사먹을까 했는데 출국장으로 오니 정말 음식 판매하는 곳이 너무 없었다. 주변에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스타벅스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되도록 스타벅스는 보이지 않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마침내 4시20분 비행기가 날아오르며 고구려 고토를 벗어났다.
기내식으로 나온 닭구이를 불과 2분만에 다먹고 창밖을 봤다. 해가 지기 직전 5시 즈음 햇살이 참 아름답다 생각하는데 그 햇살이 나에게 쏟아졌다. 잠시 감성에 취해 있을때 즘 어느새 바다가 보이고 곧 착륙을 한다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비행기가 상륙하려고 고도를 낮추면서 익숙한 한글간판들이 보이자 무척 반가웠다. 고구려가 좋아도 결국엔 익숙한 조국이 좋은것일까?
비행기가 착륙하고 아직 문을 열지 않았을때 그 사이에 나는 혹시 모를 기차표를 봤다. 원래는 친구집에서 자고 갈 계획이었으나 다행히도 밤 기차가 남아 있었다. 일행분들이 다들 차도 없는 내가 광주까지 내려가야한다니까 고생하겠다고 약간 걱정을 해주셨다. 기차를 구해서 괜찮다고 난 대답했다. 막 내릴려고 할때 일행중에 있던 초등학생 아이가 "저 내일 학교가야해서 귀찮아요" 라고 해서 "형은 학교 안가~"라고 대답해줬다. 정말이지 초등학생 상대로도 최선을 다하는 나를 보면 아직 철이 안들었다.
이후 짐을 챙겨서 공항철도를 타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짐이 꽤 늦게 나와서 서울역 직행 열차를 놓친게 꽤 많이 아쉬웠다. 덤으로 늦게 나와서 초조해지자 일행분중 한 분이 나에게 짐 수속 카톡이 안온걸 근거로 중국에서 처리안한거 아니에요? 하고 놀려서 정말 식겁하기도 했다.
열차를 타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용산까지 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것에 지방인은 신기함을 느낀다. 정녕 이게 지하철의 위엄인가.
9시 20분정도에 도착해 시립대 대학원 다니는 아는 동생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배고파서 뭐라도 먹으며 이야기 하려 했는데 다들 문을 닫고 있어 햄버거를 포장한뒤 용산역 벤치에 앉아 짧게 대화를 하고 헤어졌다. 내가 심심하다고 괜히 동생을 불러낸거 같아 괜시리 미안했다.
12시 10분에 광주로 가는 기차에 탔다 이제 용산에서 광주로 갈때 불과 5시간전만 해도 고구려 옛 땅에 있던 사람이 이제는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다니. 아니지, 장수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서울 역시 고구려 고토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도 아직 고구려 고토를 벗어나지 못하고 밤 10시가 되서야 마한 영역인 광주로 떠난다? 정말이지 고구려는 너무 거대한 나라가 맞는거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차에 오르고 잠시 잠을 청했다. 2시간이 안되서 광주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가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간단히 풀고 세안을 하고 금방 누워 잠을 청했다. 이렇게 나의 고구려유산 답사가 마무리 됬다. 이 답사가 부디 처음이자 마지막 고구려 답사가 아니기를 간절히 빌며 답사가 마무리된지 4개월이 된 지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