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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Oct 06. 2021

제주도에서 만난 귀인

성산에 사는 하얀 롱패딩 천사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살며 마음을 터놓고 지낼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제주도는 지역성이 가장 뚜렷한 곳으로 외지인이 현지인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외지에서 정착한 이주민들이 제주도에 살며 힘들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처음에 제주도에 평생 살 마음으로 내려온 사람 중에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올라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을 고민해 볼 정도로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게 외롭고 힘들던 중에 성산 동생을 만났다. 

  우리 가족이 처음 정착한 성산은 주변에 집이 별로 없는 시골이다. 집 주변이 온통 무밭인 시골 중의 시골! 집에 일이 생겨도 도움을 청할 곳이 단 한 곳도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많았다. 제주도 이주 초기, 성산 동생은 그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성산 동생은 아내가 근무했던 학교 동료교사의 남편이다. 이 부부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데, 우선 아내의 동료 여선생님도 제주도 정착을 위해 임용고시를 다시 보았다. 경상남도에서 근무하셨는데 교류가 잘 되지 않아 휴직을 하고, 제주도로 이주한 후에 임용고시를 다시 보고 합격을 했다. 내가 임용고시를 다시 본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선생님 때문이었다. 

  ‘아!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

  눈앞에 산증인이 있으니 

  ‘나도 한 번 해볼까?’

라는 마음이 생겼다. 무엇이든지 쉽게 보면 안된다. 합격은 했지만 덕분에 정말 안 해도 될 생고생을 했다. 이 선생님의 남편인 성산 동생은 제주도 성산읍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 외지인에, 동료교사의 남편, 거기에 나이까지 비슷했다. 딱 한 살 내가 위인데 성산 동생은 항상 깍뜻하게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인격적으로 배울 것이 많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한번은 한밤중에 우리 가족이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장이 나서 멈춘 적이 있었다. 견인차에 끌려가며 참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제주도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난감하다. 성산 시골은 택시도 잘 다니지 않아 집에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은 성산동생 뿐이었다. 

  “형님, 어디 공업사에요? 제가 갈게요.”
  털털대는 차안에서 한참을 짐짝처럼 실려 공업사까지 가는데 참 서러웠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와서 별일을 다 겪어보는구나.'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서글플 때, 공업사 앞에 서있는 성산 동생을 보았다. 동생은 무릎까지 오는 하얀 롱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보였다. 하얀 롱패딩의 천사!

  “괜찮으세요? 당분간 차가 없어서 불편해서 어떻게 해요?”

  성산 동생은 우리 가족을 집까지 태워다 주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쿨하게 돌아섰다.

옛날에 살던 성산집 마당과 멀리 보이는 문제의 차

  우리 가족은 성산집 전세금을 빼서 애월로 이사를 하는 날까지 이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형님, 걱정 마세요. 돌려줄 수 밖에 없어요.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집주인이 전세금을 바로 입금하지 않아 마음 졸이던 아내와 나를 밤새 안심시켜준 사람도 성산 동생이었다. 

  “제가 공인중개사잖아요. 일 잘못되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무사히 애월로 이사를 마친 후, 집에 가장 먼저 초대한 손님은 당연히 성산 동생이었다. 그날 마신 술은 유난히 맛있고 기분이 좋았다. 애월과 성산은 먼 거리여서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좋은 일이나 새로운 소식이 생기면 가장 먼저 이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아내와 나는 성산 부부를 만날 때마다 말한다.

  “알지? 우리에게 귀인인거.”

  이럴 때마다 동생은 쑥쓰러워하며 말한다.

  “와~! 형님, 영광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이런 대우를 받겠어요? 형님이니까 이렇게 대우해 주시지.”     

  아니다. 귀인 맞다.

  팍팍했던 제주정착 초기, 우리에게 큰 힘을 주고

  제주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해준  

  우리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사람이다.     

  

  성산에 사는 하얀 롱패딩 천사,

  오늘 동생에게 전화 한 통화를 해야겠다.

동생이 운영하는 부동산, 귀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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