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제주' 이야기
서울에 살 때,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전원주택에 살면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이었다.
제주도 이주가 결정되고 나는 아내 몰래 반려견 카페에 가입해서 강아지 분양에 대해 알아보았다. 실내에서 키울 자신은 없어 마당에서 키울 수 있는 진돗개를 우선으로 알아보았는데 마침 제주도에서 진돗개를 분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하얀 백구 사진을 보고는 심장이 아플 정도로 귀여워 바로 전화를 해보았더니
"죄송해요. 분양이 다 끝났어요."
라는 견주의 말에 아쉬움을 감출 수 밖에 없었다.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잊고 있었다.
제주도 이사를 하는 날, 이삿짐이 들어오고 정신이 없는데 계속 휴대전화가 울려댔다.
"혹시 강아지 분양 생각 변함 없으신가요? 분양 받으시기로한 분이 입도를 못하시게 되었다고 연락이 와서요."
"아, 네~ 그런데 저희가 지금 이사중이라 정신이 없네요. 나중에 여유있을 때 찾아갈게요."
"아니에요, 저희가 갈게요. 어미개랑 떨어지기 힘들어지기 전에 빨리 분양해야 해서요."
그렇게 우리집 강아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으로의 이사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아파트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방과 거실이 규격화 되어 있어 물건이 들어갈 위치가 거의 정해져 있지만 50평이 넘는 2층 단독주택은 주인이 하루종일 붙어 물건과 가구의 위치를 지정해주어야 한다. 한창 정신이 없을 때 처음 보는 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마당에 있었다. 아내는 부부를 보고는
"누구세요?
라고 물었다.
"강아지 분양하기로 하신 분 아니신가요?"
"잘못 오신 것 같은데요. 저희는 아닌데요."
아내의 말에 나는 얼른 강아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저예요. 저 주세요."
아내의 기가막히다는 듯한 따가운 눈총을 애써 외면하며 강아지를 안고 오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이쯤되면 아무리 내 맘대로 강아지를 데려왔어도 아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의기양양했다.
우리 가족은 강아지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제주'라는 이름으로 짓기로 하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라고 지은 것 외에는……. 진돗개는 처음 키워보는데 정말 영특했다. 집 주변에는 대소변을 절대 보지 않고 산책을 나갈 때에 길가 잡초가 우거진 곳에만 대소변을 한다.(우리 강아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진돗개의 특성이라고 한다.) 한두 번 본 사람에게는 절대 짖지 않고 처음 보는 수상한 사람들만 가려서 짖는다.(이것도 모든 진돗개의 특성으로 잘 짖지 않는단다.)
"앉아. 손!"
이라는 말을 잘 따르는 것은 특별한 훈련을 해서라기보다는
"날 뭘로 보고, 아이~ 귀찮아."
라고 하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한 지 3년이 지나 강아지 때의 귀여운 모습은 사라졌지만 요즘은 듬직한 느낌이 든다.
강아지 제주는 우리가 처음 제주도에 이사온 2018년 2월 27일에 우리 가족의 품에 안긴 아이이다. 신기하게도 우리와 제주도의 삶을 함께 시작한 아이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나는 이 아이를 볼 때면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가족'이라는 생각을 한다. 매일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책을 시켜주어야 하고, 이틀 이상 육지에 나갈 수도 없는 불편함은 있지만(가족여행을 해도 2박 3일 이상이면 한 번은 꼭 집에 와서 산책을 시켜준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다만 몸집이 커져서 주변 사람들이 위험할까봐 묶어두고 기르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친구들이 제주도에 놀러와 내 바람대로 전원주택에 살며 진돗개를 키우는 나를 보며
"정말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네. 부럽다." 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부러우면 너도 내려오던지."
라고 말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동물이 인간에게 커다란 기쁨과 사랑, 위안을 주는 만큼 인간도 동물에게 사랑과 책임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그래서 어려운 일임을 점점 더 느끼며 배우고 있다. 지금도 우리집 진돗개 '제주'는 잔디마당에서 늠름하게 집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강아지 '제주'와 제주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