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은 것은 새벽 4시경이었다. 짐을 챙길 여유도 없이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공항으로 차를 몰고 갔지만, 내가 당장 아버지께서 계신 병원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가 계신 대전에 가려면 청주공항으로 가야하는데 첫 비행기가 아침 8시 15분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4시간을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매형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공항이지? 천천히 와도 돼. 지금 가셨어."
나는 전화기를 부여잡고 공항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제주도에 내려온 것을 후회했다.
'그냥 서울에 살 걸. 그랬으면 한 시간만에 병원에 도착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런 후회를 하며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래! 이곳은 섬이구나.
제주도는 매해 인구가 늘어 인구 70만을 향해 빠르게 가고 있다. 5년 안에 인구 70만에 이른다고 하니, 10년 전 60만도 안되던 인구가 매해 평균 1만씩 늘어난 셈이다.
환상의 섬, 제주도!
제주도를 상징하는 이 문구처럼 많은 육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제주도로 이주를 한다. 제주도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정착에 실패를 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간다. 제주 이주 5년차, 우리 가족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제주도에 정착한 케이스지만 아직도 제주살이의 어려움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어려움은 모두 이곳이 섬이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내가 제주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많은 제주 토박이분들을 만나며 알게 된 것은 제주도가 고향이신 분들은 육지에 나갈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이곳에 계시고, 이곳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이곳에서 직장을 잡고,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으니 명절이 되어도, 특별한 가족 행사가 있어도 육지에 나갈 일이 없다. 대부분의 일은 모두 이 섬 안에서 행해지고 일어난다. 물론 제주도분들도 가끔 육지에 갈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에 몇 년에 한 번 놀러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와 같은 외지인은 아니다.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은 모두 육지에 있고, 지금까지 삶의 뿌리가 육지에 있었으니 일 년에도 몇 번씩 비행기를 타야 한다. 설이나 명절 때 우리 가족처럼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훑고 다니다시피 하는 가족은 몇 명의 이주민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