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주도 서쪽은 바람이 세다

'추사관'에 다녀오다.

by JJ teacher

제주도 서쪽 대정읍 여행을 다녀왔다.


두 번째 책의 원고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취재를 위해 제주도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대정읍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대정은 참 바람이 세다. 대정읍에는 모슬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의 별칭이 '못살포'였다고 한다.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 풀 한 포기 나기 힘들다는 이유로 이러한 별칭이 붙여졌다. 제주도 서쪽 여행의 목적지는 '추사관'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도달할 때 이미 차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느껴지더니 차에서 내리니 몸이 휘청일 정도로 바람이 세다. 대정에 몇 번 와 보았는데 올 때마다 똑같은 것을 보니 서쪽의 바람은 여전하다.

'추사관'을 앞에 두고 김정희 선생님의 마음을 느껴본다.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들었을 제주도라는 섬에 유배를 온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가시덩굴로 울타리가 쳐진 유배지에서 8년 3개월동안 얼마나 울분 속에 사셨을지 떠올려 본다. '추사관'은 김정희 선생님의 작품 '세한도'에 나오는 집을 모티브로 설계되었다. 세한도에 나오는 집과 소나무까지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수수하면서도 간결하고 세련된 '추사관'은 건물부터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수정.jpg '세한도'와 '추사관'

'추사관'에 전시된 선생님의 글씨들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내려놓고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였다. 원래 추사 선생님의 글씨는 기름지고 힘이 넘친다. 그가 관직에 나가 승승장구할 때 쓴 글씨는 붓털 하나까지도 힘이 넘친다. 하지만 제주도에 내려와 유배 생활을 견디며 노년이 되어 쓴 글씨는 힘을 뺀 간결하면서 꾸밈이 없는 글씨이다. 난 그 글씨를 보며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린 추사 선생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출세의 길을 달리던 그가 쓴 글씨도 멋지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글씨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그 글씨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묘한 위로와 편안함을 주었다.

IMG_0087.JPG
IMG_0093.JPG
추사 선생님의 글씨

'추사관'에 다녀와 '제주도'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본다. 제주도는 사람들이 가진 욕심과 욕망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곳 같다. 아무리 가진 욕망이 크다 해도 사람은 티끌만한 존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 같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도시에 지친 수많은 현대인들이 '제주살이'를 꿈꾸며 지금도 제주도에 내려오듯이

그 옛날 추사 선생님에게 제주도는 '욕망의 덧없음'을 알려준 곳이 아니었을까?


옛날에는 한양에서 가장 먼 유배지에 불과했던 제주도, 그중에서도 풀 한 포기 나기 어려웠던 척박한 대정읍에 기거하며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울분을 먹을 갈며 글씨로 녹여내었을 추사 선생님을 생각해 본다.


오늘도 대정의 바람은 여전하다.

IMG_009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주도에 살고 싶다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