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내가 인생을 많이 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 말은 반대로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내 성격이 유독 정에 약하고 감성적인 면이 있어 예전에는 사람을 좋아하면 참 많이도 좋아했다. 마음이 맞으면 금방 친해져 내면의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는 것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과 친해지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봐야했고, 상대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뭐 화난 일이 있나?'하는 생각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직장동료, 이웃과도 이렇게 지내는 일이 많았다. 이것이 문제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해서,
사람은 친해지면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아진다.
"왜 연락 안해? 꼭 내가 해야 해? 어쭈~~ 변했어."
이런 말들은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졌을 때 나오는 말들이다. 사람이 가까운 사이가 되면 어느 순간부터 연락의 빈도, 순서를 따지게 되고 무언가를 주었을 때 돌아올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이 드는 때부터 인간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지구력이 부족한 편이다. 얼마간은 연락도 자주 하고 만남을 갖지만, 이내 의무적인 연락과 만남을 힘들어 한다. 그렇게 흐지부지 관계가 끝이 나면 상대에게 내가 좋은 기억이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이다. 나는 내 성격이 지나치게 감성적이어서 싫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사람들에게 많이 들은 말은
"넌 참 냉정해."
였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상대가 나에게 느끼는 섭섭함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섭섭함을 나도 상대에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 내려와 살고 있으니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예전에 사람으로 인해 느낀 스트레스와 섭섭함은 나의 인간관계가 지나치게 heavy했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것을 질질 끌며 지냈다.
지금 나의 인간관계는 light하다. 제주도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알게 되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제로에 가깝다. 그 이유는
나는 사람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친한 지인이 저녁 식사 약속을 어기거나 거절했을 때, 예전이라면 크게 실망하며 분노했을 것이다. '나를 우습게 아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에 배신감에 몸을 떨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 그래? 다음에 보면 되지."
라며 쿨하게 넘긴다. 상대를 좋아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기에 실망하거나 화를 낼 일이 없다. 오히려 다음에 내가 거절할 일이 생기면 편하게 거절할 수 있어 좋을 뿐이다. 실제로 아내와 나는 상대의 제안을 쉽고 편하게 거절한다. 이렇게 살고 있지만 우리의 인간관계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사람 사이의 기대...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기대'라는 낱말 뒤에는 '그리움, 설렘'이 아닌
'집착, 보상'이라는 속뜻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 관계를 길게 이어나가는 방법,
그것은 사람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삶은 분명 자유롭고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지금도 욕심을 비워내기 위한 연습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