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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Jan 16. 2023

제주도민에게 호텔의 의미란?

'그랜드 조선 제주' 호텔에 가다.

  제주도라는 관광지에 살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호텔이다. 


  제주도에 워낙 많은 호텔이 있는 이유로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곳에서 호캉스를 누릴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비수기 시즌에는 여름이나 가을 성수기에 비하여 가격이 많이 내려가는데 잘하면 성수기의 절반 가격에 호텔의 쾌적함을 누릴 수가 있다. 제주에 5년 살며 웬만한 가성비 호텔은 거의 가본 듯하다. 제주도 호캉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때 쯤 아내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도 좋은 호텔 한번 가보자. 조선호텔이나 신라, 롯데 호텔 제주도에 다 있잖아. 우리라고 가지 말라는 법 있어?"

  아내의 말에 나도 괜히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 법 없지! 우리도 갈 수 있지!

 

 그렇게 하루에 50만원이 넘는 호텔비를 지불하며 조선호텔로 향했다. 확실히 5성급 호텔은 서비스가 달랐다. 차가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차문을 열어주고, 최대한 친절하고 교양있는 말투로 응대를 하는 모습에 우리나라 대표 호텔의 품격이 느껴졌다. 룸에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리된 룸컨디션과 고급스러운 비품에 기분이 좋아졌다. 빳빳하면서도 포근한 침구류와 누우면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 같은 침대는 이곳이 왜 일류 호텔인지를 알려주는 듯 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아이들의 성화에 온수풀로 향했다. 사우나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온수풀은 한겨울이지만 따뜻하게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았다. 한번 수영장에 들어간 아이들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놀았다. 저녁 어둠이 내릴 때까지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때문에 보게 된 호텔의 야경은 나를 괜히 감성에 젖게 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며 말도 안되는 사악한 가격에 마음이 쓰라렸지만 '누릴 때는 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순간을 즐겼다. 

외국에 온 것만 같은 호텔전경

  밤이 되자 아이들은 룸에서 tv를 보고 아내와 나는 호텔 로비 카페에서 맥주 한잔을 하기로 했다. 카페에는 피아노와 플루트 연주자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니 맥주에 취하는 것인지, 음악에 취하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행복하다."

라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서윤 작가의 'HAVING'이라는 책을 보면 '소비를 할 때 진정으로 누리면 행복과 돈이 찾아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지는 모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HAVING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로서 방학을 맞이했지만 새학년도에 중책을 맡게 되어 학교에 매일 출근하며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지쳐있었는데 순간의 여유로움과 풍족함을 누리고 나니 다시 시작해볼 에너지가 생기는 듯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HAVING중

  제주도에 살면 비행기를 타지 않는 한, 어디를 가도 제주도이다. 제주도가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작은 섬에 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람들은 제주도에 오래 살 수록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 한다. 제주 토박이 분들에게 우리 가족이 호캉스를 즐기고 캠핑을 다닌다고 하면 

  "아니, 제주에 집이 있는데 왜 밖에서 자요? 돈 아깝게...."

라며 신기해 한다. 하지만 집과 호텔은 분명히 다르다. 저렴한 호텔이어도 호텔은 설레는 곳이지만 아무리 좋은 집이어도 집은 설레지 않는다. 사람이 설렘을 느낀다는 것은 내면에 에너지가 차오르는 일이기에 중요하다.

  제주도에 오래 살면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한라산이 평범한 뒷동산처럼 느껴진다. 매일 부는 바람이 그렇게 성가실 수 없다. 제주도를 벗어나려면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고립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각에 빠지면 제주에 사는 것은 외롭고 힘겨운 일이다. 옆에 매일 있으면 그 존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제주도에 사는 매력과 소중함이 사라질 때마다 나는 호텔을 찾아가려 한다. 그곳에서 설렘을 느끼려 한다. 그렇게 제주살이의 행복을 지키며 살아가려 한다.


  결국 모든 일이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는가?

뒤늦게 내려온 딸과 음악 감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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