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분노했다.
우리나라에서 단일직종으로 가장 많은 종사자를 가지고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바로 교사이다. 초중고를 합해 전국에 50만 이상의 교사가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수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점이 평소에 의아했다. '악성민원, 교권 침해 등 교사에게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이 일어난 지 이토록 오래 되었는데 교사들은 왜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이 정도의 숫자면 무시 못할 힘을 가질 수도 있을텐데 왜 교사는 당하고만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초등교사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교사는 모래알 같아. 뭉치는 힘이 부족하거든."
국가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고 대항하지 못하며 숨어지내며 흩어졌던 교사! 그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뭉쳤다.
'0902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멀리서 집회에 참여하는 만큼 앞에 앉아 더욱 열정적으로 참여하려 했지만 나의 마음보다 더욱 뜨거운 마음을 가진 교사들이 이미 여의도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더 이상 교사들은 모래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2구역에 걸친 집회장소는 교사들로 가득 채워졌다. 주최측 추산 30만의 교사들이 모였다고 하니 3/5의 교사가 한곳에 모인 것이다.
9월인데도 서울의 날씨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태양열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로 인하여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다. 사회자의 구호에 맞추어 목이 쉬어라 외쳤다.
"아동복지법을 즉각 개정하라!
교사의 교권을 보호하라!
우리는 교육을 지킨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구호가 국회앞 여의도 광장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서이초 교사의 (전) 학교 동료의 사연과 편지에 모두 눈물을 흘렸고 대학 동기들의 처절한 외침에 함께 절규했다.
왜 이 사회는 누구보다 순종적이고 인내심 강한 전국의 교사들을 주말 불볕 더위에 광장에 모이게 만든 것일까? 왜 이 사회는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교육에 열정을 바치는 교사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 지금 교사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참아오기만 했던 억울함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며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처절한 외침이 되어 퍼진 것이다.
서이초 교사가 돌아가신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해 학부모가 누군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처벌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집회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며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7회에 걸친 집회가 이루어졌지만 학교 현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직도 학부모는 악성민원으로 교사를 괴롭히고 있고 다시 두 명의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비극은 언제 막을 내릴 것인가? 얼마나 많은 교사가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운명을 달리해야 끝이 날까?
9월 4일 서이초 교사 49재에 참여하겠다는 교사들에게 교육부는 '불법, 징계, 복무 감시, 처벌'이라는 단어를 쓰며 공문을 보내 겁박하고 있다. 아직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교육부의 모습에 이제는 분노가 아닌 연민이 느껴진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전국 50만 교사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하나된 외침은 계속될 것이다.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어떠한 부당한 간섭없이 제대로된 교육을 하고 싶은 것, 공교육의 정상화 그 단 한 가지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교사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곁을 먼저 떠난 서이초 교사에 대한 남아 있는 교사들의 책임이며 의무이기 때문이다.
3시간에 걸친 집회가 끝나고 돌아가려는데 한 선생님이 크게 말씀하셨다.
"하늘에 무지개가 떴어요."
집회를 마치는 절묘한 시각에 떠오른 무지개를 보며 자리에 모인 선생님들이 탄성을 외쳤다. 그 무지개를 보며 하늘에 있는 서이초 선생님, 서울 사립초 기간제 선생님, 호원초 선생님, 양천구 선생님, 군산의 선생님이 무지개로 화답을 하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 무지개가 더욱 선명하고 예뻐 보였다.
집회에 참석한 30만 교사들이 외친 구호
"우리는 모래알이 아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외침을 기억하며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공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깨어있는 의식을 지닐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선생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집회를 마치고 일어서자 하늘에 뜬 무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