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이와 촉법소년
얼마 전 방영한 '더 글로리'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잔인하게 피해를 당한 동은이, 안타깝게도 고등학생인 동은이를 지켜준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동은이는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강해져서 돌아와 직접 복수를 한다. 왜 사람들은 '더 글로리'에 열광을 했을까? 그것은 부모가, 학교가,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또는 않은) 피해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 때문일 것이다.
요즘 갑질 학부모로 운명을 달리한 서이초 교사, 관평초 교사, 호원초 교사가 '더 글로리'의 동은과 무엇이 다를까? 이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밤낮 없이 욕설과 막말, 협박, 악성 민원을 당하고 심지어 200도 안 되는 월급 1/4을 8개월 동안 갈취 당해도 이들을 지켜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육부도, 교육청도, 학교도, 교장교감도 이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러는 사이 고통 받았던 교사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요즘 사적 제재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국가의 적법한 사법시스템에 의해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권선징악, 자업자득,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난 두 의견에 대하여 논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롤스로이스 사건'에서 보았듯이 때에 따라서는 '사적제재'가 '공적제재'보다 효과가 빠르고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며 피해자가 원하기도 한다. 만일 '카라큘라 탐정 사무소'가 없었다면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악랄한 가해자들이 빨리 처벌될 수 있었을까? 실제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여성분은 국가의 기관보다 유튜버를 더 믿고 의지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대전의 관평초 사건, 의정부의 호원초 사건에도 '카라큘라 탐정 사무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스타 계정이 나타났다. 본인을 '촉법소년'이라 칭한 계정의 주인은 두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신상을 공개하고 그들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촉법소년'은 각 사건별 부계정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주계정의 팔로워는 이미 5만 명을 훌쩍 넘어섰고 부계정의 팔로워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촉법소년'을 통해 관평초 사건의 악질 학부모 4인방이 누구인지 밝혀졌으며 가해자 중 한 명이 운영하던 '바르다 김선생 관평지점'은 문을 닫았고 아직 나머지 학부모와도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호원초 교사에게 8개월간 50만원씩 400만원을 갈취하고 2차 치료비까지 요구한 악질 학부모가 근무하는 북서울 농협 도봉지점에서는 가해자를 대기발령 조치하고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정말 놀랍도록 빠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모든 사안을 국가의 사법기관에만 맡겼다면 지금처럼 빠른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어쩌면 가해자가 누구인지 지금도 알 수 없을지 모른다.(우리는 지금도 서이초 사건 가해자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사건은 잊혀지고 돌아가신 분들의 억울함은 한이 되어 남을 것이다. 촉법소년의 사적제재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분으로 인하여 갑질 학부모의 악랄한 행동과 선생님이 받았던 피해가 자세하게 알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아직 아주 부족하지만....가해자들이 불이익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왜 우리 사회는 피해자에게만 끈기와 관대함만을 요구하는 것일까?
왜 우리 사회는 피해자에 대한 권리보다 가해자에 대한 권리를 더 중요시 생각할까?
'불법 신상 공개 금지법, 개인정보 보호법'
을 운운하는 사이 어디선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촉법소년(촉시탈)을 응원한다.
가해자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저지른 악랄한 행동에 대해 하루 빨리 깨닫고 사죄할 수 있다면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사적제재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첫발령에 설렜을 선생님,
첫 제자를 만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을 선생님,
교사로서 꽃을 피우기도 전에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한
20대 중반의 9호봉 초임교사 이영승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