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교사 임용고시'라는 국가고시를 두 번 합격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히 신기해 하는데, 요즘 20대의 젊은 교사 중에 자신이 발령이 난 지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험을 다시 보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사례가 특이한 것은 40이 넘은 현직 교사로서 시험을 다시 보았다는 것이다. 내가 시험 공부를 하던 때는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초등교사 T.O.가 갑자기 줄어 예년의 절반도 뽑지 않는다고 공고가 난 때, 하필 그때 시험을 다시 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참 신기하게도 교직에 나와서도 시험을 자주 보았다.
대학원 석사, 박사에 진학을 할 때도 필기와 면접을 보았고(심지어 석사는 두 곳을 진학해서 시험을 두 번 보았다.), 편한 학교를 마다하고 국립부설초등학교로 학교를 옮길 때도 시험을 보았다. 수업실연, 영어면접, 심층면접에.... 부설초등학교 시험을 볼 때는 나름 현직에서 이름 좀 있다는 교사들과 경쟁을 했다. 40이 넘어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는 시작은 했으니 멈출 수는 없고, 합격은 해야 했고 그야말로 피를 말렸다. 머리는 예전 같지 않지, 공부는 힘들지.... 하루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 내 인생 고단하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높아져서 40대라는 나이가 젊게 느껴지지만, 옛날 기준으로 보면 40대는 젊은 나이가 아니다. 옛날 위인 중에 40대에 돌아가신 분들을 흔하게 찾아 볼 수 있고, '불혹'이니 뭐니하며 40대를 나타내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내가 시험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나는 이것을 간과했다. 그래도 공부 좀 했고, 책도 많이 읽고 대학원도 다녔으니 머리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공부를 하며 느낀 것!
20대와 40대 머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순발력'이다. 40대는 '인풋'은 할 수 있지만 '아웃풋'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쉽게 말하면 인출하는데 버퍼링이 오래 걸린다. 시험이라는 것은 아는 것을 정해진 시간 내에 쓰고 나와야 하는 게임이기에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임용고시를 다시 준비하며 모의고사를 여러 번 보았는데, 도저히 정해진 시간 내에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시간에 허덕이다 보면 마음은 급해지고 뒤에 배치된 문제는 거의 날림으로 쓰거나 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20대 대학생들은 시험을 다 보고 시간이 남아 검토를 하고, 심지어 엎드려 쉬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이 점이 참 신기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내가 임용고시를 처음 보았던 20대의 나도 시간이 남아 검토를 여러 번 했다. 나는 순발력이 더욱 필요한 2차 시험에도 고전을 했다. 심층면접, 영어면접, 수업실연 등 묻는 즉시 기계적으로 답이 나와야 하는데, 나는 한참을 버퍼링을 거친 후에 가까스로 대답을 했다. 모르는 것은 아닌데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문제는 나이였다.
'인풋'도 마찬가지이다. 20대에는 책을 한 번 쑥 훓어 보아도 머릿속에 절반 정도는 남아 있었는데, 40이 되니 몇 번을 정독해도 책만 덮으면 백지상태였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20대와 겨루어 합격을 했다니...'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극단의 절제력' 하나였다. 나는 우선 스마트폰을 없애고, 15년도 더 된 2G 슬라이딩폰을 구했다. 그 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화 걸고 받기, 문자 보내고 받기 외에는 없었다. 스마트폰의 유혹을 벗어나니 집중할 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지루해지면 물 마시러 가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방문 안쪽에 걸쇠를 만들고, 스스로 방문을 자물쇠로 채워 버렸다. 자물쇠 중에 시간을 설정하는 자물쇠가 있는데 시간을 설정해 두면 그 시간이 될 때까지 절대로 열 수가 없다. 책상만 있는 방안에 자물쇠를 채워놓았으니 할 수 있는 것은 공부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극단으로 몰아갔다.
시험 공부를 할 때 썼던 2G폰과 시간설정 자물쇠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블로그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내가 쓴 '임용고시 합격수기'라는 글을 읽은 많은 수험생들에게 쪽지를 받았다.
'선생님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습니다.'
'저도 나이가 40대인데 선생님 글을 보고 시험 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심지어 특강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정중히 거절했지만, 쪽지들을 보며 내가 한 일이 평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누군가에 희망을 주었다니 좋은 일이기는 한데, 솔직한 마음은 말리고 싶다. 시험을 위한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싸움이며 보장 없는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며 한때 장학사 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주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