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 손절러가 되고 싶다

by JJ teacher

하나의 조직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관계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아직 잘 모르지만 직장동료와는 아무리 가깝고 친해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할 때 나는 이것이 참 어려웠다. 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만큼 나를 경계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경계하는 자체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나도 어렸다. 사람이 좋고 싫은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좋은 것이고, 그냥 싫은 것이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나는 가기 싫은 자리에 정말 많이 끌려다녔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질질 끌려다녔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원하지 않는 자리에 참석해 영혼없는 웃음을 짓고는 했다. 서울에서 나는 체육부장을 했는데 체육부장의 역할중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는 교장과 운동을 함께 해주고, 술상무 역할을 하는 것이다. 퇴근시간이 다가왔을 때 교실로 인터폰이 울리면 100% 교장이었다.

"체육부장, 오늘 뭐하나?"

이 말은 내 일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술 한 잔 하자는 말이다. 물론 나는 한 번도 거절할 적이 없다. 약속이 있어도 선약을 취소하고서라도 교장의 술자리에 나갔다. 교장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것 뿐인데 이것조차 다른 교사들에게는 시기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그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참 피곤했다.


제주도에 내려왔다. 제주도로 내려와서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자동으로 인간관계가 리셋되었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육지의 지방과는 다르다. 일단 섬이기 때문에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과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정말 친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관계가 이어진다. 그들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나를 보러 제주도에 온다. 지금 나의 휴대전화 연락처 목록은 참으로 가볍다. 더불어 내 마음도 깃털처럼 가볍다. 그리고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자리나 내가 가고 싶지 않은 자리는 과감하게 거절한다. 내가 거절하기에 내가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인간관계가 이토록 클린하고 라이트하니 내 시간이 생기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늘어났다.

매일 저녁 우리집에서는 짠타임이 있다. 매일 건배사를 만들어 짠! 하는 시간이다. "미안, 얘들아! 엄마 아빠가 좋은 것 가르친다~~"

"나는 어떤 시간이 가장 아까운지 알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억지로 만나고 있는 시간이 가장 아까워."

아내가 한 이 말에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앞으로 내게 남아있는 시간만큼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좋은 사람, 함께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싶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웃으며 행복을 느끼고 싶다.

"너는 어떻게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려고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이런 말을 내게 자주 하셨다. 그 말을 들을 때는 내게 정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말은 다수가 소수에게 행하는 무언의 압박이자 폭력이라는 것을, 개인의 의사는 무시한 채

"이렇게 살아야 해!"

라는 다수의 강요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 누군가는 이러한 내 생각을 이기적이라고 볼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기에,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방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쿨하게 인정할 의향이 있기에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아니겠는가?

얼마전 서울에서 함께 근무했던 후배교사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나만큼 힘들어했고, 안쓰러운 마음에 도움을 주고자 했던 후배교사였다. 연락이 오면 반갑게 받아주고, 제주도에서 나오는 귤이며 한라봉까지 주기적으로 보내주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다른 일로 결국 내가 상처를 받고야 말았다. 그러면서 다시 느꼈다. 빠른 손절은 인간관계의 끝을 아름답게 맺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살면서 남을 의식한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남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이런 생각은 한 번 하면 끝이 없다. 우습게도 자신이 그토록 고민하는 이유인 남들은 나를 그렇게 중요하게도, 깊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 고민할 뿐이다.

인간관계에 자신감을 갖자.

사람에 대한 예의만 갖추고 내가 싫은 것은 싫다고,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정중하게 사양하자. 그것이 오히려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거절하면 저 사람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서로를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만든다. 결국 내가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러한 인간관계는 꼭 끝이 좋지 않다. 인간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는 필요가 아닌 필수이다.

지금 내 휴대전화의 연락처 목록을 살펴보자. 불필요한 인연을 지나치게 많이 맺으며 살아오지는 않는지 한 번 돌아볼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는 나를 손절러로 만들어 주었다.

지금 나의 인간관계는 매우 가볍다.

나의 삶의 무게도 많이 가벼워졌다.

나의 시간이 많아졌다.

그것이 정말 만족스럽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프로 손절러가 되고 싶다.

인간관계가 가벼워지니 내 시간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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