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뒤늦게 폭 빠져서 보는 드라마가 있다. 시간도 한참이나 지난, 2018년에 방송이 된 '나의 아저씨'다. 사실 나는 주인공인 이선균 배우나 아이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제주도에 놀러온 누나가 본인의 '인생 드라마'라며 꼭 보라는 말에 호기심으로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1편부터 정주행하게 되었다.
드라마 속의 '박동훈 부장'은 딱 지금의 내 나이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20년 정도 한 직장에 근무하고 부장 정도의 위치에 있는, 위에서는 누르고 아래에서는 올라오고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40대 부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드라마를 보며 대사 하나하나가 나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모르면 아무 것도 아니야."
"여기가 천국인지 알았니? 현실이 지옥이야."
다소 부정적이고 체념하는 느낌의 대사들은 40대 중반 남자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여보, 대한민국 40대 남자들은 돈이 없대. 그래서 누가 술 사준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한다더라."
얼마 전 출근을 준비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 말이 맞았다. 30대에 비하여 연봉도 올랐고 승진도 했을텐데 40대 남자는 마음이 더 궁핍하고 여유가 없다. 아이들의 학원비와 과외비는 해가 갈수록 늘고 나에게 쓰는 돈은 점점 줄어든다. 나는 원래 옷을 좋아했다. 출근할 때는 깔끔한 정장을 입는 것을 좋아했고 휴일에는 화사한 외출복을 입는 것을 좋아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옷에 관심이 없다. 30대 때는 후배들을 만나면 1차, 2차, 3차까지 모두 선뜻 내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지금은 머릿속에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꼭 돈이 없는 것만은 아닌데 돈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 40대라는 나이는 나를 참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나의 아저씨' 속 이선균 배우는 대표이사인 학교후배에게 술을 따르고 회식자리 고기를 구우며 더러운 직장생활을 버텨낸다. 하지만 비열하지는 않다. 화가 나면 대표이사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핀 대표이사에게 주먹을 날릴 줄도 아는 가슴 깊은 곳의 자존심은 살아있다. 야망이 없어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비굴하지는 않다. 직장 동료에게 젠틀하고 인간적이며 자신의 일을 후배에게 미루지도 않는다. 그런 박동훈 부장을 모두들 좋아한다. 드라마를 보며 박동훈 부장의 모습에 대리만족이 느껴졌다. 직장 생활을 하며 '승진'을 절대적인 목표로 삼지 않고 살아온 나이지만, 드라마에서 박동훈 부장의 상무 승진이 확정되자 모두들 얼싸안고 좋아해 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세상에는 저렇게 멋진 승진의 장면이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는 승진은 '경쟁과 모략'등 부정적인 것이었는데 '영광과 보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항상 뒤늦게
소중한 것에 대한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일까?
영화 '화차'를 좋아했고 이선균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고 느꼈지만
영화 '기생충' 속 이선균의 연기를 안정적이라고 느꼈지만
이선균 배우의 소중함을 알지는 못했다.
6년 전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이제 보고 나서야 이선균 배우의 소중함을 알게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