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장교사의 주변인, 아웃사이더로 살아가기 선언
"교감선생님,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1교시 공강시간, 교감선생님께 상담을 신청했다.
"저 올해까지만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 일은 필요하신 분이 하시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올해 교육부 연구학교 연구부장교사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라면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연구학교 1년차 야근에 야근을 거듭하던 내가 드디어 말을 꺼낸 것이다. 교무실에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승진점수가 필요하신 분이 일을 하시는 것이 맞지 저처럼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년에 다른 학교로 가겠습니다."
이미 나라는 캐릭터에 대해 잘 알고 계신 교감 선생님께서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씀하셨다.
"안타깝기는 한데 잡을 수가 없네. 미리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나는 마지못해 잡고 있던 승진의 끈을 놓았다.
지난 주말, 유치원선생님을 상대로 그림책 강연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내가 전공한 분야를 선생님들과 나누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구학교 브리핑을 할 때와는 다르게 강연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내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사람은 역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어제 교감 선생님과의 10분 정도의 상담 시간은 타인과 나 자신에게 공언을 한 순간이었다.
이제 저는 승진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서울 초등교사가 제주도에 내려와 잠시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경력이 아깝다. 장학사 시험을 봐라. 연구학교 하며 점수 얼른 모아라. 등등... 나보다 어리고 경력이 짧은 교사가 교감 승진 대상자에 오르고 발령 소식이 전해질 때면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제주도는 타지역에 비하여 보수적인 곳이라 '남자 교사는 무조건 승진해야 한다.'는 인식이 교직 전반에 깔려있다. 서울에 있을 때는 평교사로 지내며 자신 나름의 교직관을 펼치며 사는 교사들도 많았는데 제주도는 '일단 승진은 하고 보자'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교사로 지내며 내 시야도 어느새 그들의 인식에 맞추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본래의 나로 돌아오려 한다. 내가 제주도에 온 것도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으니까. 제주도 출신도 아니고, 제주교대 출신도 아니고, 제주도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은 진정한 주변인, 아웃사이더인 내가 주변의 눈치와 선입견에 사로잡혀 살 필요도 없지 않은가? 나는 이제 정말로 자유롭게 살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인생을 즐기며 살 것이다.
승진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날, 가슴 한 쪽에서 허전함을 느꼈다.
평범하지 않은 나의 교직생활에 대한 회의도 느껴졌다.
하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진정한 자유인,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