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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Aug 21. 2024

40대 부장교사의 내려놓기 연습

이제 내려놓으려 합니다

  내가 초등교사 2년차 때 옆반에 정년이 2년 밖에 남지 않은 원로교사 남자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승진을 하지 않으셨지만 다른 선생님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계셨는데, 20대 혈기왕성했던 나는 그 선생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셨으면 교장 선생님도 충분히 되셨을 분인데 왜 평교사로 계실까?'

  선생님께서는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셨는데 이제 막 교직에 들어선 나의 눈에는 본인보다 한참 후배가 교장 교감인 학교에서 입지가 줄어든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동시 작가로도 유명하신 그 선생님 옆에서 2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역시 오랜 교직경력에서 오는 노련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면 하루도 빠짐 없이 빈 교실 아이들 책상 하나하나를 물걸레로 닦고 계신 선생님의 모습을.... 마치 성스러운 의식처럼 행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도 40대 중견교사가 되어보니 알겠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책상 하나하나를 닦으시며 교사로서의 본인의 마음가짐도 깨끗하게 닦고 계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선생님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참스승이라는 것을...

  내가 몇 해 전 서울의 초등교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온 것은 아무런 욕심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울의 국립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나는 나이스의 인사기록도 호봉과 경력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정리하지 않았다. 연구점수, 승진점수, 포상기록, 부장경력 이러한 것을 등재하는 순간 다시 욕심이 생길 것 같았고 이러한 경력에 대한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한번은 교감 선생님이

  "연구부장은 교육감 표창도 하나 없어? 왜 이리 인사카드가 깨끗해?"
라며 의아해 하시길래

  "때가 되면 정리하겠죠."

라고 무심히 넘겼다. 정말 그렇게 욕심없이 살고 싶었다.

   

  "아직 신부장은 놓지 못한 거야. 얼른 승진 준비해!"

  작년에 교장으로 승진해서 다른 학교로 가신 또 다른 교감 선생님께서 떠나시며 하신 말씀이다. 연구부장을 맡아달라는 교장 선생님의 부탁에 몇 번을 거절하다가 맡게 되었는데, 그때 교감 선생님께서는 정확하게 나의 의중을 뚫어보고 계셨다. 40대 남자 교사, 부장교사라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아무리 내면이 강한 사람이 있다해도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내가 다시 부장교사를 하게 된 것은 '내가 나이랑 경력이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책임감이 있고 선배교사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도 엄연히 내 시선이 아닌 남의 시선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 아니어도 회사는 다 돌아간다. 더 잘 돌아갈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들은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해도, 어떤 눈으로 보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정도 나이와 경력에 정도의 위치에는 있어야지.'라는 것도 남의 시선이기에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굉장히 예민하다. 그러나 정작 남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관심도 없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신의 인생을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맞추고 정확하게 직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느껴져도

  '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라며 쿨하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꼰대가 아닌 사고가 말랑말랑한 자유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이제 나도 정말 내려 놓으려 한다. 나의 꿈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교사이기에, 학교보다 내 인생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이고 싶기에, 돈이나 명예가 아닌 시간이 부자인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나를 괴롭히는 미련과 잡다한 생각들로부터 멀리 벗어나려 한다.


  불꺼진 고요한 교실에서

  정성스레 아이들 책상을 하나하나 닦으시던 선생님을 생각한다.

  선생님께서는 책상을 닦으시며 그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 웃음소리를 떠올리셨겠지?

  내일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고민하셨겠지?

  나도 그렇게 멋진 교사로 나이들고 싶다.

  꼭 그렇게 되고 싶다.

항상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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