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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남자와 서울 여자의 제주살이(2)

-스타벅스의 딜레마, 마카롱과 요거트

by JJ teacher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렸던 글 중 가장 완독률이 높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 중의 하나가 '충청도 남자와 서울 여자의 제주살이'라는 글이다. 우리 부부를 아는 사람들은 익히 보아온 모습에 재밌어하고, 모르는 독자들은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흥미있어하는 것 같다.

아내는 서울 여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나를 만났다. 우리 부모님께 첫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 아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 충청도 처음 가봐. 경기도 밑으로는 한 번도 안 가봤어."

개인적으로 나는 아내가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야가 좁아서 어떻게 인생을 살려고...... 아내는 나를 만나 대전도 가보고, 충청도도 구경하고, 심지어 제주도에서 산다. 서울사람 참~! 출세했다. 아내는

"으이구! 내가 누구 때문에 내려왔는데!"

라고 하겠지만......


결혼은 서로 반대의 사람이 만나 중간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던가? 우리 부부는 지금도 서로 맞추어가고 있다. 식탁에 꼭 국이 있어야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을 하던 내가 이제는 셀러드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출근을 한다. 외식을 하자고 하면 당연히 부페나 레스토랑을 생각했던 아내가 아무렇지 않게 해장국집을 따라온다. 반대로 아내가 고급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면 메뉴판을 한참 바라보다가 눈을 질끔 감을지라도 잘 따라다닌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 맞추어 왔다.

문제의 스타벅스!

그런 나에게도 아직 맞추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스타벅스이다.

아내는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케냐, 브라질.... 나라별로 커피를 마신다. 내 입맛에는 다 똑같은데

"음, 역시 달라. 이 커피는 좀 신맛이 나네?"

라며 커피를 음미한다. 나에게 커피는 잠을 깨기 위해 마시는 것일 뿐, 다 똑같다.


커피, 그래! 우리나라가 세계가 인정하는 커피 소비국이니 내가 이상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말도 안되는 가격의 스타벅스 굿즈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커피숍에서 왜 이런 것들을 팔까?

때마침 오늘 퇴근하니 내일이 내 생일이라고 아내가 스타벅스 머그컵을 생일선물로 사왔다. 생일선물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사주는 것인데 왜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있었다.

"미안한데 여보,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거 얼마야?"
"31,000원"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인정한다. 나는 아내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선물이니 머그컵을 한 번 살펴보았다.

혹시 글씨가 금으로 새겨진 것은 아닌지.......

다이소에서 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삼 만원이 넘는 스타벅스 머그컵

뭐 굿즈를 자주 사는 것도 아니니 이것도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고르는 메뉴이다. 스타벅스에 가면 딸은 마카롱과 음료를, 아들은 요거트를 시킨다.

마카롱과 요거트!

정말 이것만큼은 참기가 어렵다. 오백 원 동전보다 조금 큰 마카롱이 삼사천 원이 넘고, 요구르트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병에 담긴 요거트가 육칠천 원이 넘는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오렌지주스나 에이드를 시킨다면 기꺼이 사줄 수 있는데 가성비 떨어지는 이 음식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다.

"아들, 요거트 먹고 싶어? 음... 이거 하나면 아빠가 소와 나무 요구르트 한 묶음 사줄 수 있는데? 다른 것 먹자. 싫어? 음... 불가리스는 어때?"

이렇게 말해도 아들은 요지부동이다.

"딸, 마카롱 꼭 먹어야겠어? 아빠가 마트에서 크라운 산도 한 박스 사줄게. 아빠 눈에는 똑같은데? 아니야? 달라? 카스타드는 어때? 싫어? 음... 그래도 다른 것 먹자."

내가 언젠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나를 기가막히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박장대소했다.

"푸하하! 소와 나무? 마카롱이랑 산도가 같냐? 내가 미쳐."

스타벅스 직원도 내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스타벅스 요거트 한 병이면 소와나무 유산균음료를 이만큼 살 수 있다.

아내는 계산대 앞에서 그렇게 내게 무안을 주더니 테이블에 와서 한 마디 더했다.

"제발 그러지 마. 여보 입맛 싼 거 선생님들 알아? 누가 들을까봐 겁나네. 이럴 때 보면 진짜 충청도 사람같다니까."

아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억울하다.

"나 대전광역시 출신이거든?"

아내가 사온 마카롱, 요거 두 개면 산도 한 박스를 사고도 남는다.

내가 충청도 사람이든, 서울 사람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백 원 동전만한 마카롱보다 양도 많고 맛도 있는 산도 한 박스가 낫다. 스타벅스 요거트 하나면 소와 나무 요구르트 10개를 살 수 있는데(덤으로 두 개 더 주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경제적이다. 맛의 차이도 모르겠다.

언제쯤이면 나도 둘의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열 번 양보해도 아직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아내와 나는 참 다르다.

제주도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차 안에서 바다를 보며 캔맥주만 마셔도 힐링인데

아내는 느낌있는 Pub에서 '피시 앤 칩스'에 크림생맥주를 마셔야 힐링이다.

나는 마당에 놓인 캠핑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며 믹스커피만 마셔도 좋은데

아내는 예쁜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마셔야 좋아한다.

나는 제주도 숲속에서 텐트만 쳐도 행복한데

아내는 멋진 수영장이 있는 호캉스가 행복하다고 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수제맥주와 피시앤칩스

아내와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이지만

나도 많이 변했다.

아침마다 아내가 내려주는 일리커피의 맛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매일 열일하는 일리커피 머신

아내가 우울해 하면

"스타벅스 갈래?"

라고 먼저 이야기도 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믹스 먹어!")

모두 다 아내에 대한 마음 때문이다.

뼛속까지 서울여자인 아내가 나 하나 믿고 제주도에 살고 있으니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결혼 참 잘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스타벅스 마카롱 대신 크라운 산도,

스타벅스 요거트 대신 소와 나무 요구르트

많이 다른 것일까?

정말 모르겠다.

언제쯤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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