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정착기
처음에는 정말 쉽게 생각했다.
벌써 17년전 이야기이지만 나는 교대를 졸업함과 동시에 임용고시를 한 번에 합격했다. 그것도 아주 넉넉히, 우수한 성적으로...... 내 인생에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다. 놀라운 것은 교대에 다닐 때 학점이 바닥이어서 내신이 거의 최하등급이었던 내가 임용고시 한 방으로 모든 것을 뒤집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쉽게 교사가 되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40이 넘어 다시 준비한 임용고시, 난 자신만만했다.
"마음먹기 힘들어서 그렇지. 하면 하는 거지. 뭐가 어렵냐?"
이렇게 주변에 공언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머리가 예전의 20대 머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20대 때는 한 번 집중해서 읽으면 어느 정도 암기가 되었는데 이제는 10번을 봐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임용고시를 보던 시기와 비교도 안되게 공부할 것이 지나치게 많았다. 또한 지금 교대를 졸업하는 경쟁자들은 나 때 교대를 들어가던 시절과는 다른 모두 수재들이었다. 20대 젊은 수재들과 40대 아저씨가 경쟁을 하려니 정말 경쟁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슬프다.
어느새, 내가…….
10월이 되어 치른 모의고사 점수를 보니 도저히 합격할 점수가 아니었다. 2차, 3차 모의고사 모두 같은 점수였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오기가 생겼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했다. 타이머로 순수하게 집중한 시간이 12시간을 찍는 날이 쌓여갔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저녁은 거르고 공부한 날도 많았다.
발을 잘못 들인 것 같아 그만둘까 했지만(난 돌아갈 학교가 서울에 있었다.) 공부한 것이 아까워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
제주도가 뭐라고 내가 이러는지 남들은 서울 못 와서 난리인데 정말 내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위에 공언도 했으니 자존심상 물러날 수도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 기나긴 레이스를 완주했다. 1차 시험을 거쳐 2차 시험을 치르는 동안 나는 완전 번아웃되었다.
정말 하얗게 불살랐다.
첫 임용고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해 가문의 자랑이었던 내가 40이 넘은 두 번째 임용고시에서는 거의 문 닫고 합격했다. 정말이지 나이는 못 속인다.
"공부에는 때가 없다."
그 말은 진짜 틀린 말이다. 진심으로 공부에는 때가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그말도 정말 틀린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늦은 것이다.
"대단하세요. 아직 공부머리가 있으세요? 능력자!"
"머리가 진짜 좋으신 것 아니에요? 역시 서울교사"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 나는 괜히 있어 보이고 싶어
"교사가 교사된 건데 별 것 아니에요."
"운이 좋았어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미친 짓이었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다신 안 해요.'
비록 이렇게 힘든 시기를 거쳐 제주도 교사가 되었지만
모든 일에는 교훈이 있는 법이다.
임용고시를 두 번 보며 느낀 것은
"과거는 과거일 뿐, 세월 앞에 겸손하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