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과 자아만족

- 제주도 초등교사가 되어 느낀 것

by JJ teacher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자아실현!"

서울에 살 때 아내가 동료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내의 동료선생님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교대를 졸업하고 의사와 결혼해 강남에서 몇 십억이 넘는 아파트에 살고, 학교에 우아하게 bmw를 타고 출근하는 선생님. 연세가 50대 중반이어서 원로교사 대우를 받으며 교과(음악, 미술)전담을 하는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분노했다.

"야, 너 그 선생님이랑 말 섞지마. 그런 사람들이 교사 욕먹이는 거야. 누구는 학교일 다 떠맡아서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편하게 수업만 하고, 그런 사람들이 제일 싫어."

그 당시 나는 스카우트 총대장을 8년째 맡고 있었고, 생활부장, 학년부장까지 겸임하고 있었다.

"여보, 그래도 그 선생님 애들은 좋아해. 잘 가르치시고."

"업무도 없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수업도 못하면 그만둬야지."

내가 이렇게 대꾸하자 아내는 다시는 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제주도에 내려온 후,

문득 그 선생님이 떠올라 아내에게 잘지내시는지 물어보았다.

"아, 그 선생님? 명퇴하셨어. 잘 살고 계시겠지. 워낙 밝은 분이시니까."

아내 대답에 내가 말했다.

"요즘 그 선생님 생각이 가끔 나. 그분이야말로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




직장에서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쫓기듯 살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보다 앞서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남들 보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여야하기 때문에 항상 조급하다. 내가 학교에서 근무하지 20년을 향해 가는 교사로서 느낀 것은 내 또래 교사들이 명확한 목표없이 승진만을 위하여 달려간다는 것이다.

'내가 교장이 된다면 나는 ( ) 학교를 만들거야. 그래서 나는 승진을 할거야.'

가 아닌

'내 후배가 교장이 되면 어떻게 해? 그 밑에서 일할 수 있어? 남교사는 승진해야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교사가 많다. 나는 묻고 싶다. 승진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장교사님들은 ( )안에 어떤 말을 자신있게 채울 수 있을까?

뚜렷한 교육철학이나 원하는 이상향의 학교가 있어서 교장을 꿈꾸는지, 아니면 단지 나이 들어 부끄러워 보이지 않기 위해 교장이 되려하는지 한 번 자신을 성찰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교직에 나와 선배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불행하게도

"남자는 승진해야 해. 평교사면 나이들어서 초라해. 그러니까 얼른 점수 쌓고 준비해."

였다. 어디에도 어떤 교장이 되어라는 말은 없었다.




자아실현을 가장 싫어하는 말이라고 한 그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서는 부장교사를 하지 않았고, 승진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동료교사들에게 친절하셨고, 아이들을 사랑하셨다. 수업도 잘하셔서 학부모와 아이들도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사신 그 선생님이 진정한 인생의 위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에서 온갖 일을 떠맡으며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시는 선생님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길을 선택한 선생님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아이들을 사랑해서 퇴임하는 순간까지 평교사로 지내고 싶어하는 선생님들이 인정받지 못한다.

"명퇴해야지. 이제는 나이 들어서 아이들도 학부모도 안좋아해. 선생님들도 불편해하고."

라며 명퇴를 바라보시는 선배교사들이 많다. 자아실현이란 말을 싫어하신다고 하신 선생님께서는 어떤 이유로 명퇴를 하셨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 분은 교직생활을 하시는 동안

자아실현 대신 자아만족을 선택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 앞에 당당하셔서 멋지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승진과 평교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완전히 내려놓기에는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아깝고, 아직은 젊다. 만일 내가 승진의 길을 걷는다면 그 이유가 '남들 보기에 쪽팔려서'는 아닐 것이다. 승진이 자아실현과 그로 인해 자아만족으로 갈 수 있다면 묵묵히 그 길을 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아실현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자아실현도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 길이 진리라고,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길이라고 믿을지라도 잠시 멈추어 주위의 다양한 길들을 살펴보기를 바란다. 자신이 믿는 진리가 어쩌면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질 신기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필요하다.

서울에서 온갖 잡다한 업무는 다 떠맡고 연구학교를 쫓아다니며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믿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서울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지금 나는 행복하다.

이 세상에 진리는 없다.

진리가 허상이 될 수도 있고,

허상이 진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한심해보이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

어쩌면 내 인생보다도 가치있을 수 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자아실현!"

아이들과 동료교사에게 친절하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그 선생님.


지금도 그 분은 행복하게 사실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common2715SZOP.jpg 곧 스승의 날이다. 별로 특별할 것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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