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살이를 정의내려 볼까? 주중은 죽음, 주말은 환상!"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가 제주도 학교에 출근을 하던 때 퇴근한 아내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며 한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아내는 제주도에서의 교사생활을 서울에서의 교사생활보다 힘들어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슬쩍 잔에 맥주를 채워주었다. 말은 안했지만 아내의 눈빛에는 '내가 어쩌다 저 인간을 만나서 제주도까지 내려왔나?' 하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나는 아내의 말 중에서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는 것은 제주도에서 주말을 맞는 것은 정말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중에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
나는 금요일 퇴근하는 차 안에서 항상 노래를 부르며 집에 온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제주도는 주말이 되면 거리에 있는 자동차부터 달라진다. '하, 호, 허' 번호판이 즐비하고, 한산하던 도로가 막히기 시작한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다. 제주도에 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나는 주말만 되면 관광객모드로 바뀌어 버린다. 정말로 주말퇴근길이 여행길 같고, 내가 지금 몰고 있는 차가 렌트카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니 주말이 얼마나 환상적이겠는가? 주말마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으니...
서울에서의 주말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차는 항상 막혔고, 괜히 놀러갔다가는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기에 집에서 tv나 보며 뒹굴뒹굴했다. 밤에는 아파트 친구나 형들을 만나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일이 전부였다. 좀 특별하게 보낸다면 가족과 백화점이나 찜질방에 가는 정도?
제주도에서의 주말은 정말 다채롭다. 봄이면 바다로 숲으로 캠핑을 다니고, 여름이면 집에서 5분도 되지 않는 바다에서 하루종일 물놀이를 한다. 가을이면 억새가 우거진 오름을 오르고 겨울이면 귤도 따고, 호캉스를 다닌다.(겨울 비수기에는 호텔이 정말 싸다.) 여기 살면 외식을 하러 비싼 음식점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 바다가 보이는 마당에서 바베큐를 하면 어느 비싼 음식점보다 훨씬 멋지고 맛있다. 어디 나가고 싶은데 가족들이 호응 안 해주어도 괜찮다. 마당에 텐트 치고 나 혼자 홈캠핑을 하면 된다. 이렇게 지천에 놀 것들이 널려있으니 체력이 되지 않아 못 놀 뿐이지 놀 것이 없어 고민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주말마다 놀려는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한다.(제발 집안에 가만 있자고...^^)
흔히 제주도에 이주한 주민들은 2년이 위기라는 말을 자주 한다. 2년 제주도에서 살아보면 회의감이 몰려든다고 한다. '지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내 친구들은 서울에서 잘 나간다는데......' 물론 나도 그랬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행복이 무엇일까? 부정적인 생각은 남과의 비교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저 사람과, 저 가족과, 저 부모와... 내가 서울에서 좋은 학교에서 근무했고, 승진도 했고, 대학원도 다녔고, 집도 있고, 좋은 차도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이루려했고, 이루었던 것들이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행했던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보다 빨리, 남들보다 더'라는 말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바로 행복하지 않은 이유였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어서 항상 떳떳하다. 지금 나는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온 제주도에서 내가 주인공인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물론 가끔 자괴감이 밀려들기도 하지만 점점 더 내려 놓으려하고 있다. 내려 놓는 만큼 행복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