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날씨가 제주살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덩달아 기분이 우울하고, 날씨가 화창한 날은 괜히 마음이 들뜬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는 날씨에 민감하지 않았다. 비가 와도 우산 한 번 펼쳐보지 않은 날이 많았고(서울에서는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하기에 그게 가능하다.) 날씨가 좋다고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제주도에서는 날씨에 따라 도민에서 관광객으로 모드가 자동변경되니 날씨에 항상 민감하다.
우리 가족은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좋아한다. 주말 뿐 아니라 평일에도 날씨가 좋으면 아내와 눈빛으로 말한다.
"해안도로, 콜?"
제주살이의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출근을 하는 평일에도 잠시 관광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안도로는 그렇게 자주 가도 갈 때마다 새롭고, 설렌다.
"오늘 바다색 너무 예쁘지 않아?"
해안도로를 달릴 때마다 아내와 나는 도돌이표처럼 같은 말을 한다.
오늘도 퇴근하고 애월해안도로를 달렸다. 며칠 미세먼지로 제주도의 맑은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없었기에 날씨가 좋아지자 바로 하귀애월해안도로로 차를 몰았다. 모두들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해안도로에는 차를 세우고 사진찍기에 바쁜 관광객과 도민들이 섞여 있었다.(제주도에 3년 넘게 살아보니 누가 관광객이고 도민인지 다~ 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제주도의 바다를 옆에 끼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제주도에 사는 맛이다.
해안도로는 분명 빨리 가는 길이 아니다. 제주도에도 섬을 관통하는 빠른 도로들이 많이 놓여있다. 직선도로를 달리면 해안도로의 거리는 20분이면 도착한다. 하지만 해안도로를 타면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해안도로를 왕복하면 한 시간이 넘으니 이처럼 비경제적일 수도 없다. 그러나 쭉 뻗은 아스팔트를 달리면 제주도의 아름다운 바다와 붉은 석양을 볼 수가 없다.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해안도로를 달려야만 한다.
우리 인생에도 여러 종류의 길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가장 빠른 직선도로만을 달린다. 또 다른 사람은 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펴 상쾌한 공기와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오솔길을 걷는다.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외면하고 느린 길을 택해 걷는다. 어떤 길이 현명한 길일까?
서울에서의 나는 항상 조급했다. 분명 빨리 가고 있었는데 남들이 나를 앞서가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
제주도에서의 나는 느긋하다. 남들이 나보다 분명 앞서가고 있지만 상관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내 속도대로 걷고 싶다. 천천히 걸으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함께 여행하고, 웃으며 공감하고 싶다.
잘 뻗은 고속도로만을 달리면 하늘이 푸른지, 꽃이 피었는지, 나무는 무슨 색인지 알지 못한다.
천천히 돌아가는 해안도로를 달리면 매일 변하는 바다색과 하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난 오늘도 해안도로를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