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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해수욕장의 추억

그곳에 가고 싶다

by JJ teacher

2017년 여름, 우리 가족은 2주 제주살이를 했다. 지금도 제주한달살이가 유행이지만 그때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tv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은 제주살이 열풍에 불을 지폈고, 각종 제주여행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기간 지낼 숙소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로 어려웠다. 한달살이 집은 모두 만실이었고, 특히 제주의 특색을 살린 돌집과 마당이 있는 주택은 이미 몇 달 전에 예약이 끝나있었다.

commonU6J9J4B0-horz.jpg 리모델링된 깔끔한 돌집 민박 (출처: 명월민박)

나는 며칠을 검색하고 전화한 끝에 표선해수욕장 앞에 있는 빌라를 렌트했다. 14박 15일 비용이 98만원이었는데, 주택도 아닌 방 2개 빌라 가격치고는 매우 비쌌다. 하지만 그거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단독주택을 구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결과적으로는 깔끔한 신축 빌라에서 2주간 묶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걸어서 표선읍내에 도착할 수가 있었고 주변에 편의점, 베이커리, 마트 등 편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표선해수욕장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표선해수욕장은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물놀이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해변을 따라 파라솔이 꽂힌 돌로된 탁자가 있어 편하게 의자에 앉아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물이 차오르는 밀물 때는 돌탁자 바로 밑에까지 물이 들어오는데, 아이들이 가까운 곳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어 안전하다. 표선해수욕장은 썰물 때 어마어마한 백사장이 펼쳐진다. 표선해수욕장을 해비치해변, 하얀모래해변이라고 부르는데 드넓고 둥글게 펼쳐지는 하얀모래해변은 장관이다. 지금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축제를 하지 않지만 해마다 표선해수욕장에서는 '하얀모래축제'가 열릴 정도로 유명하다. 저녁이 되면 하늘은 빨갛게 노을이 지고, 하얀모래해변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멀리 펼쳐진 바다까지 관광객들은 표선해수욕장의 풍경에 모두들 넋을 잃는다.

20180606_193734.jpg 표선바다의 풍경

우리 가족은 2주간의 제주살이 동안 거의 매일 표선해수욕장을 드나들었다.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어깨에 튜브와 물놀이 도구를 짊어지고 걸어갔다. 25,000원만 내면 파라솔이 쳐진 돌탁자를 하룻동안 전세내고 사용할 수 있으니 이보다 경제적인 피서도 없었다. 물놀이를 하다 배가 고프면 탁자에 놓여진 전단지를 보고 치킨을 시켰는데 신기하게 배달하시는 분들은 정확하게 우리의 위치를 찾아내어 가져다 주었다. 놀다가 배고프면 물에서 나와 배를 채우고, 다시 물에 들어가고.... 아이들은 하루종일 놀았다.

아내와 나는 탁자 앞에 앉아 맥주를 마셨는데, 표선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의 맛은 환상적이다. 예전에 제주도로 여행오면 대부분 3박 4일 정도의 짧은 일정으로 왔는데, 이곳저곳 한 곳이라도 더 가야하기에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14박 15일의 일정은 여유있게 제주도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무엇이 중요해서 가족들과 이런 시간도 마음놓고 보내지 못했던 걸까?'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보며 가족과 있어 행복했다. 표선에서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20170725_113519-tile.jpg 표선해수욕장에서의 추억들

제주도에 이주한 후 지금도 여름만 되면 표선해수욕장을 간다. 그곳에 가면 서울에서 지쳐있다가 표선바다를 보며 행복을 느꼈던 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이들을 양팔에 한 명씩 끼고 숙소에서 뒹굴며 행복해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내 품에 안겨 세상을 다 가진듯 웃어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선명하다.


2017년 여름, 표선바다 앞에서의 2주 살이는 결국 나를 제주도로 이끌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욕심을 버리고 제주도로 내려온 것이 잘한 결정이었는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지금 매우 행복하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옳은 결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처럼 살라고, 제주도로 내려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도시의 직장생활에 번아웃된 많은 현대인들이 잠시 휴식을 가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한 달이고, 2주이고 자신에게 시간을 주자. 아무 것도 하지말고 그냥 놀아보자. 그 정도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리고 이 선물은 분명 내 인생에서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드넓고 둥글게 펼쳐진 하얀모래 백사장과 붉은 하늘, 푸른 바다...

표선해수욕장은 제주도에 내려온 지금도

지치고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그곳에 가고 싶다.

20190605_190006.jpg 노을진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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