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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억새의 향연, 산굼부리

by JJ teacher

제주도를 지나치게 좋아한 나머지 시간만 있으면 비행기를 타는 '제주찐매니아'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제주도를 관광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가을이라는 것이다. 제주도를 찾는 인원이 가장 많은 계절은 물론 여름이다. 어제 뉴스를 보니 휴가철에 하루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평균 4만 명이라니 얼마나 많은 인원이 오는지 실감이 간다. 하지만 여름에 제주도는 매우 덥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섬(마라도를 제외하고)이니 더운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더해 제주도는 여름에 습하다. 고온다습! 초등학교 고학년 사회시간에 자주 나오는 날씨를 나타내는 이 낱말에 최적합한 곳이 제주도이다.

4계절중 제주도에서 최고의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가을이 최고의 계절인 이유는 일단 날씨 때문이다. 날씨가 맑고 화창하니 습하지가 않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파란 계절이라고 하는데 제주도의 하늘은 그 이상이다. 하늘이 맑을 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멋진 구름이 파란 도화지에 하얀 그림을 그려놓은 것만 같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놀러다니기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 그래서인지 이 기간에는 젊은 사람들보다 중년분들이 많이 제주도를 찾는다. 아마도 오랜 경험에서 제주도의 가을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라산을 등반하기도 가장 좋고 오름에 오르기도 좋다. 물속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바라보기에는 가을 바다도 멋지다.




나도 4계절중 제주도의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이유는 바로 억새 때문이다.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 나도 주로 여름에 제주도를 찾았으니 억새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제주도에 살면서 억새가 주는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억새는 갈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알고 보면 완전히 다르다. 억새는 갈대에 비하여 하얀색을 띄고 솜털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반면에 갈대는 갈색빛을 띄고 거칠고 빳빳하다. 갈대는 바람에 거칠게 흔들리지만 억새는 바람을 따라 호수처럼 잔잔하게 일렁인다. 억새가 핀 곳을 지나면 파란 가을하늘 아래 하얀 억새가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억새의 멋진 풍경을 만끽하고 싶으면 제주도 오름의 70%가 몰려있는 제주도 동쪽을 가면 된다. 구좌읍에는 제주도의 유명한 오름들이 모여있는데 금백조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 길가에 핀 멋진 억새를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금백조로는 가을이면 억새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 차량으로 혼잡하다.

IMG_9376-horz.jpg 가을철 제주도 도로를 따라 핀 억새

나는 길옆에 핀 억새도 좋아하지만 억새를 보기 위해 가을에 꼭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산굼부리이다. 산굼부리는 조천읍 교래리에 위치한 오름이다. 산굼부리는 천연기념물 제 263호로 지정된 분화구인데 제주도의 오름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곳이다. 그만큼 역사와 지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한라산의 백록담보다 크고,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없이 분화구가 생긴 마르(Marr)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분화구라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산굼부리를 찾는 이유는 오직 억새 때문이다.

산굼부리는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인데 분화구를 보러 가는 길에 핀 가을 억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너나 할 것 없이 걸음을 멈추고 억새밭에 들어가 사진 찍기에 바쁘다. 나는 산굼부리에 핀 억새를 보면 솜이불이 생각난다. 부드러운 억새 위에 누우면 따뜻하고 편하게 잠이 들 것 같다. 산굼부리의 억새밭을 보면 다소 비싸게 느껴졌던 입장료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산굼부리 정상에 올라 유명한 분화구를 보고 주위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 이곳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조금 오래된 영화이지만 장동건과 고소영의 '연풍연가'라는 영화를 보면 산굼부리가 자주 나오는데 반가운 것은 그때 영화에서 보았던 산굼부리가 아직 그대로라는 것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산굼부리는 변하지 않았다.

산굼부리.jpg 산굼부리를 뒤덮은 억새

축제와 같은 제주도 여름이 지나가면 조용하고 감성적인 가을이 찾아온다. 가을철 뉴스를 보며 연일 설악산과 지리산등 단풍명소를 찾아다니는 등산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도는 알록달록 한라산을 물들인 단풍외에도 들판을 하얗게 물들이는 억새도 볼 수 있으니 가을철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풍족한 선물을 안겨주는 것 같다. 올가을이면 나는 당연한 듯 산굼부리에 오를 것이다. 올해도 산굼부리는 여전할 것이다.


가을 억새의 향연, 산굼부리. 벌써 가을이 기다려진다.

commonESR04N1L.jpg 영화 연풍연가 속 산굼부리 억새밭- 이때도, 지금도 산굼부리의 억새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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