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teacher Sep 06. 2021

내게는 어려운 숙제 = 사진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다

  요즘 출간 때문에 정신이 없다. 처음에는 11월 출간 예정이었는데 9월 말로 출간 시기가 앞당겨졌다. 내가 전업작가도 아니고, 일정을 맞추기 위하여 퇴근을 하면 스터디카페로 직행을 했다. 글을 쓰고 처음으로 편집장의 독촉이라는 것을 받아 보았다.

  "주말 동안 작업하시면 월요일 오전까지 가능하시지요?"

  내 직업 뭐? 선생! 난 숙제를 참 잘한다. 원고는 잠을 줄여서라도 맞추겠는데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사진이다. 


  나는 흔히 사진귀신이라는 부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멋지고 예쁜 곳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야 그렇다해도, 다른 사람과 함께 간 음식점에서 

  "잠깐! 멈춰!"

하며 상대방이 본인의 음식도 마음대로 못 먹게 하는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를 타도 사진, 내려도 사진, 밥을 먹어도 사진, 차를 마셔도 사진, 날씨가 좋아도 사진, 흐려도 사진, 해가 떠도 사진, 해가 져도 사진.... 사진 찍는 것이 생활화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들이댔다. 사진에 관해서는 아내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사진 찍기에 취미가 없다. 이것이 책을 내는 것에 이토록 아쉬운 점이 될 줄은 몰랐다. 

  

  3주 전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샀다. 

  "선생님 다른 사진은 없으세요? 이런 사진은 퀄이랑 구도가 떨어져서 책에 못 써요. 이번주 내로 꼭 보내주셔야 해요."

  계속되는 편집장의 요구에 당근마켓을 뒤져 괜찮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했다. 그리고는 주말마다 카메라를 메고 제주도 전역을 훑고 다녔다. 

당근에서 산 미러리스 카메라

  "선생님, 배경이 너무 흐려요. 날씨 좋은 날 다시 한 번 부탁드려요."

  제주도는 주말마다 왜 이리 날씨가 안 좋은지, 날씨가 좋은 날을 기다려 갔던 곳을 다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 찍는 사람을 그렇게 비난했던 내가 이제는 음식이 나오면 

  "건들지마!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마!"

하며 가족들을 얼음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매주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건만....! 돌아오는 편집장의 말!

  "선생님, 혹시 주변에서 사진 주실 분은 없으실까요?"
  아~! 사진의 세계는 참 멀고도 험하다. 옆집에 사는 인스타 구독자가 몇 천이 되는 여자분께 사진을 몇 컷 부탁했다. 보내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자 편집장에게 바로 답장이 왔다.

  "선생님, 완전 좋아요!"

옆집 여자분의 사진, 차이가 뭘까...?

  헉! 오래된 일이지만 나는 교사로 처음 발령이 나서 받은 내 인생의 첫월급을 DSLR카메라 구입에 몽땅 집어넣었다. 사진 잘 찍는 친구를 따라다니며 조리개값이 어떠니, 아웃포커싱이 어떠니 하는 것도 배웠다. 어떤 폼으로 찍어야 멋있어 보이는지 강의도 들었다. 아마도 내가 가장 열심히 들은 것은 사진 찍는 폼이었던가 보다. (사실 연애할 때 많이 써먹기는 했다.)

  "선생님, 감성 에세이에 어울리는 사진은 따로 있어요. 얼굴이 절대 정면으로 나와서는 안되고요, 구도와 색감이 정말 중요해요. 그리고 여성분들이 확실히 남자보다는 사진을 잘 찍어요." 


  지난 주말, 다시 미러리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성산, 표선, 조천을 다니며 예뻐 보이는 곳은 무조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편집장에게 꼭 인정을 받고 말리라!'

  처음에는 이런 오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제주도의 모습이 카메라에 예쁘게 담길까?'

하는 마음으로 연구하듯이 사진을 찍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긴 제주도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었다. 제주도는 카메라를 어디에 들이대어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카메라에 담긴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에 사진을 잘 찍겠다는 부담감은 사라지고, 사진을 찍으며 제주도의 자연과 풍경을 즐기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느낌가는대로, 눈이 가는대로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 좋은데요? 조금 더 보내주실 수 있으세요?"

  사진을 보내고 처음 편집장에게 칭찬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며 다시 한 번 느꼈다.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가 내 주위에 있어도 볼 줄 모르면 그만이라는 것을, 사물을 보는 뷰파인더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제주도에 살며 마음의 뷰파인더로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싶다. 

어제 찍은 사려니숲 사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이 선택한 제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