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즈카페에서 작가가 되었다.
창의는 아이를 춤추게 한다.
철학자 “니체”가 말한 초인이 되는 방법으로 낙타 >사자 > 아이의 정신을 이야기했다.
처음 낙타 정신은 나는 해야 한 다이다. 낙타 정신은 무거운 짐을 싣고 버텨내는 삶을 말한다. 오로지 주인의 명령에 낙타는 나는 해야 한다. 나는 해내야만 한다를 외치며 복종하게 된다. 사막에 무거운 짐을 지고 복종하며 앞만 보고 가는 것을 낙타 정신이라고 이야기한다.
낙타 정신을 극복해 낸다면 다음 단계는 사자 정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자 정신은 나는 하길 원한다로 바뀐다. 낙타는 해야만 한다면 사자는 하길 원하다로 좀 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을 의미한다. 사자 정신으로 들어서면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하며 스스로 해나가려 노력한다. 낙타는 타인의 의지에 끌려다니는 삶이라면 사자는 주도적인 삶을 의미한다.
마지막 니체는 최고의 정신을 아이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자 단계를 지나 아이의 정신에 들어서게 되면 최고의 몰입 단계에 도달한다고 한다. 철학자 니체는 아이 정신의 특징을 “순진무구” “망각” “새로운 출발”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놀이” “최초의 움직임” “성스러운 긍정”이라고 이야기했다. 니체는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아이가 노는 모습을 통해서 최고의 창의는 아이의 모습에서 발현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최고의 선물은 아이의 생각으로 돌아갔을 때 몰입에서 발현되는 창의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해서 모든 걸 빨리 망각하고 바로 새로운 출발을 하며 새로운 놀이를 발견하고 모든 것에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러한 결과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창의적인 예술가가 된다.
나는 책을 쓰면서 니체의 정신이론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정체되어있던 삶을 살았을 때는 알지 못했을 영역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아이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책을 쓴다는 건 순간적으로 최고의 몰입이 필요하다. 한 꼭지를 쓰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는 생각이 발현돼서 쭉 치고 들어가야 끝까지 쓸 수 있다. 다 쓰고 나면 어떡해 내가 이런 글을 썼지 라고 깜짝 놀랐때가 있다. 사고가 딱딱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못 한다. 사고가 유연하고 아이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내꺼”라는 개념이 강해진다. 어렸을 때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옆에 친구가 보이면 자기가 들고 있는 사탕 한 쪽도 나눠 먹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또한, 아이들은 순수해서 망각의 신이다. 뒤돌아서면 자기가 한 일을 까먹고 다시 시작하는 힘이 발휘된다, 어른이 되면 망각을 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망간은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다. 실패하더라도 빨리 잊어버려야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과거의 실패를 후회라는 개념으로 머릿속에 담아 둔다면 과거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아이들을 잘 관찰하면 정말 빨리 까먹는다. 혼나도, 칭찬해도, 방금 무언가 만들고 부서져도 다시 만들 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빨리 잊어먹고 다시 실행할 수 있는 아이만의 힘이다. 만약 어른이 아이의 정신을 이해한다면 망각이란 개념을 이용한다면 도전을 하고 실패하여도 망각을 이용해 실패의 두려움을 빨리 떨쳐 낼 수 있다.
내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면 창의의 신이다. 우리는 귀찮아서 생각하지 못한 걸 스케치북과 색연필만 있다면 종일 그리고 만든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생각의 범주가 유연하다. 못 그린 것 같지만 잘 그렸고 괴상한 것까지만 특별하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약간은 괴상한 면도 있고 잘 그린 것인지 못 그린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만큼 피카소는 마지막 아이의 단계로 자신의 세계를 그림으로 녹여 냈기 때문에 세상의 피카소의 그림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쩌면 피카소의 마음으로 그림이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유연함과 순수함 속에서 아이들은 우주와 연결된다.
아이가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한다. 캔 블랜차드의 <칭찬은 아기고래도 춤추게 한다.>처럼 칭찬은 아이의 창의를 불러일으킨다. 지금 아이는 집을 지저분하게 하는 게 아닌 창의적인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칭찬을 자주 할수록 아이의 꿈과 창의력은 행복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칭찬이 어색하고 인색했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아이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창의적인 모든 활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아이들은 종일 물어보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귀찮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아이와의 대화는 재밌다. 나는 글을 쓰기 때문에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지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오히려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 또한 최종 단계는 니체가 말한 아이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어렵게 쓴다고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의 자세로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내 손에 있는 사탕 반쪽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 있는가? 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으로 쉽게 유연하게 쓰는 글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 나는 아직 아이의 정신까지 도달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사회의 시선을 아이의 시선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가 아이와의 소통에 있어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년 서점에서 안성은 작가의 <MIX> 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라 재밌을 것 같아 구매하여 읽어 보았다. 생각대로 창의적인 생각의 집합체였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창의를 끌어내 융합하고 뒤틀고 비꼬아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세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래된 것과 최신의 것을 섞고, A급과 B급을 섞는다. 본캐와 부캐를 섞고 기술과 인간을 섞는다. 어쩌면 뻔하지만 어울릴 것 같지 않을 걸 섞고 융합했을 때 새로운 가치가 탄생한다. 책에서 손정희 회장의 일화가 나온다. 손정희 회장은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하루 한 가지씩 발명하자 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300여 개의 낱말 카드를 무작위로 뽑아 새로운 아이템을 발병해 냈다고 한다. 그 방법으로 무려 1년에 250건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작가 또한 마찬가지다. 3개의 단어를 던져준다면 내 생각을 덧붙여 3개의 단어를 융합해 한 가지 주제로 글을 만들어내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유연한 사고는 순수한 마음 실패해도 빨리 망각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이의 자세가 필요할 때 융합하고 섞을 힘이 발생한다. 우리는 아이의 순수한마음과 창의의 장점을 살려줘야 한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매사에 이야기한다면 아이의 창의는 어느 순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우주가 준 최고의 선물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창의란 우리 옆에 있는 것이고 더 융합해서 사고하라고 칭찬해준다면 아이들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리게 되지 않을까? 칭찬은 아기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처럼 오늘부터 아이의 창의를 불러일으키는 칭찬을 해나가 보자. “잘하고 있어 아기고래야 창의를 불러일으켜 줘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