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편
나만의 부의 그릇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행동 1단계에서 즉시 시작하는 것의 중요함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는 게 아니다. 진입장벽부터 낮춰야 시작할 수 있다. 스스로 진입장벽을 높게 설정했기 때문에 시도조차 못 하고 시작하더라도 빠르게 지치며 포기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고 나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실망한 나와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하게 되면 다음 도전을 더욱 망설이게 된다. 실패한 잔상이 머릿속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 시간만 흘러가게 된다. 성공의 방정식에서 나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치열하게 살며, 목표를 높게 잡고 부에 도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 부의 그릇을 높이 잡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의 부의 그릇을 행복이라는 개념을 입힌다면 과정 또한 훌륭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 인식 속에 꾸준히 행동해나가고 도전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과거에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렬했다. 강렬했기 때문에 책을 출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자로만 부자가 되기로 계획했을 때와 현재 글을 쓰고 내면을 단단히 하면서 목표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도 내 목표는 100억이다. 이는 복리 투자로 2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처음 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하는 도중 한해 7000만 원 이상이 수익이 발생했음에도 100억이라는 목표가 저위에 있다 보니 행복하지 않았다. 분명 훌륭한 성과 임에도 기대치를 너무 높게 설정해 놨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 내가 보이지 않고 더위를 비교해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월급과 2번째 파이프라인으로 들어오는 돈의 흐름은 훌륭하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월급 이상 돈이 필요하지도 않다. 두 번째 파이프라인에서 들어오는 돈은 온전히 자산증식과 재투자로 인해 내 자산을 불어나게 하는 용도로 쓰이게 된다. 어느 날 나에게 물어봤다. “100억에도 전하는데 투자만으로 되겠어?”“이것만으로 가능할까?” 나 스스로 답을 했다. “안될 것 같아” 그럼 책을 출간해보자. 10년 동안 책을 읽어본 적도 없었지만, 그날 다짐하고 블로그개설과 책을 쓰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작가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머릿속에 모호하게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던 개념들이 한곳으로 집중되면서 명확해진다는 걸, 그리고 죽음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찰해 내면서 돈보다 위에 있는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의 그릇은 존재하며 누구나 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명확해 졌다.
핀란드는 2023년 세계 행복도 순위에서 여섯 번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도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이유로는 소득 평등 및 자연 밀접도 등 여러 이유가 제시돼왔다. 핀란드의 “유카 사볼라이넨 교수”는 핀란드의 높은 행복 수준의 이유로 좋은 삶에 대한 기대치를 제한하는 문화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삶에 대한 기대치가 낮으므로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란타 버크 강사”는 이에 반박하며 미래에 대한 높은 기대치가 목표 설정에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은 정식적 대비를 통해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평가하고, 어떤 꿈을 좇을 수 있는지, 또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출처 디지털투데이 AI리 포트>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들어 붙인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아 감옥을 탈출했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의해 날개는 녹고 추락하게 된다. 이카루수의 날개는 욕망으로 인한 상황으로 인식한다. 나는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기대치를 너무 높게 설정해 살아간다면 지나친 욕망의 발현으로 오히려 부로 가는 길을 망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상황을 겪어봤다. 100억이라는 최종목표는 존재하지만 기대치를 현재에 끌고 와 살아가기 때문에 지금 발생하는 과정 또한 훌륭하지만, 만족을 못 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기대치를 높여 살아간다면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어느 순간 나의 목표는 태양과 닿아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분명 처음 설계했던 계획은 훌륭함에도 말이다. 훌륭한 계획을 성공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너무 높은 기대치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낮은 기대치는 조란타 버크 강사의 말처럼 목표의식이 희미해질 수 있다. 너무 높은 기대치는 독이 되고 너무 기대치를 낮춰버리면 목표의식이 희미해진다. 그러면 나의 부의 그릇을 찾고 동시에 행복한 과정을 느끼며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앞서 사람의 의지력은 100%로의 상태로 진행되는 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3일은 100%의 의지력으로 실행하고 3일 이후에는 나의 의지력을 60%에서 70%로 낮춰야만 마라톤 선수처럼 장기간의 레이스를 달려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기대치 또한 마찬가지다. 기대치 또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단계를 찾아가야 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기대치 또한 나는 60%에서 70% 수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기대치를 일정 부분 낮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현재 목표지점에 20% 수준에서 단기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하면 된다. 즉 100이라는 목표치가 있다고 가정하면 20%의 달성 목표를 5단계로 나눠 단기목표, 중기목표, 장기목표로 나눈다. 그리고 장기목표를 최종목표로 하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단기목표 20%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기대치는 확연히 낮춰지고 목표에 대한 성취감 또한 좋아진다. 목표를 100%를 두고 현재 살아간다면 20%를 달성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를 괴롭히는 과정에서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지쳐 쓰러지는 현상이 기대치를 너무 높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표를 적어보자. 그리고 100이라는 목표치가 있다면 20*5로 단계로 구분해 단계별 목표를 세분화해본다. 20%가 완성되었다면 100% 목표치를 바라보는 게 아닌 다음은 40%의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분명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충분의 잘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1%의 성과를 오늘의 100%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오늘 나는 목표에 1%를 달성한 게 아니라 오늘의 과업을 100%로 달성한 것이다. 작은 1%의 성과가 모이면 하루하루가 즐겁다. 그리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다.
주식투자를 하다 보면 하루에 10만 원씩 꾸준히 버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매일 매일 조금씩 버는 것부터 시작이다. 처음에는 10만 원이지만 성과에 대한 만족 그리고 자신감으로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하루 1000만 원을 벌겠다고 기대치를 높이 잡는다면 테마주, 급등주식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하루 변동성이 큰 주식에 손을 대고 몇100%의 수익률을 단기간에 꿈꿀 수밖에 없다. 안 좋은 습관이 몸에 깊숙이 자리하게 된다면 단기간에 “초심자의 행운”이 찾아올 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내 계좌도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내가 찾아낸 부의 법칙은 반대로 기대치를 일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뭐든지 과하면 독이 된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한 건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치열함 속에서도 행복의 과정이 존재해야 하며, 목표를 높이 설정하고 앞만 보고 나아간다더라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의 과정을 찾아가야 한다. 아무리 젊음의 시간을 다 쏟아부어 부에 도달한들 젊음의 시간과 추억은 다시금 돌아오지 않는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열심히 살아가고 목표에 도전하되 중간에 행복이라는 계단을 설치하고 같이 목표와 함께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분명 쉽지 않지만, 이 책을 체득 화해나간다면 분명의 자신의 철학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