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일까?
고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의 대목이다.
“고도가 내일은 꼭 온다고 그랬지!
....
그래도 모르겠어? ”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정체불명의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이야기다. 그들은 황량한 길가에 있는, 나무 밑동만 남은 나무 아래에서 매일 고도를 기다리지만,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고도는 희망, 구원, 신, 죽음, 행복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하지만, 내가 생각한 고도는 오지 않는 먼 미래의 꿈을 무작정 기다리는 우리 삶과 비슷하다는 해석을 했다. 우리는 평생을 막연히 그때 가서 해야지, 언젠가 고도가 찾아올 거라며, 지금의 선택을 뒤로 미루는 결정을 한다. 만약 당신의 지금의 현실에 불만족스럽고 진짜 자유를 위해 나아가고 싶다면, 우선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금의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을 같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 아마도 회사생활과 회사 밖에서 쓰는 에너지와 시간은 50대50 비율로 비슷해진다. 1+1=2가 되는 세상으로 한걸음 들어온 것이다. 2가 되는 세상에 들어오면 초입에 경제적 안정감이 찾아온다. 그리고 지금 생활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솟아난다.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다른 꿈을 꾸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시간과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노동소득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50% 써 지금의 소득을 만들었다면, 이러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다. 노동소득에서 빼앗기는 시간과 에너지를 전환해 자본소득과 가치소득에 내 에너지와 시간을 100% 쓰면 어떨까? 내 가능성은 무한대로 커지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순전히 노동소득에서 자본소득으로 이동 더 나아가 가치소득으로 넘어가는 세상 1+2=3이 되는 세상으로 넘어올 수 있다. 당연히 2를 가지고 있다면, 1을 버리고 3을 얻기 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힘들게 자본소득까지 넘어왔는데 더 큰 목표를 나아가기 위해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2의 세상까지 넘어오면, 자연스럽게 다음 행보를 망설이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디야”
“이미 잘하고 있는데”
“1+1=2의 세상은 너무 행복한데”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2의 세상으로 들어와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간다면, 대부분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에 잠식당하면서 끌려다니며 살아갈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지금의 경험까지 도달했다면, 어렵지만, 삶이 무한히 확장하는 3의 세상으로 넘어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지금 경제적 자유, 시간에서의 자유를 얻어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아이와 아침을 함께하고, 학교를 데려다주며, 커피숍에 와서 글을 쓰고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내가 원하는 공간, 원하는 시간을 모두 쓸 수 있는 삶은 도달해 보지 못하면 알 수 없다. 은퇴해서 겨우 끌려다니며, 여유 없이 느끼는 감정과 스스로 자본소득을 키워 가치소득까지 넘어와 삶을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과는 삶의 질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똑같지 않다. 아마도 자본소득을 키우더라도 계속해서 “조금만 더”라는 한계에 갇혀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번 퇴사를 앞두고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했다. 나 역시도 몇 년간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퇴사 결정은 완벽한 준비에서 나오는 결심은 아니다. 완벽한 준비가 없듯 완벽한 삶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이 같아지는 시점에서 안주하지 말고, 또 다른 세상이 있는 삶,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으로 나가 도전을 해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