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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리자고의 자리 Apr 17. 2024

세월호 10주기 추도문화제를 마치고


 

안녕하세요.

 저는 10년 전 무력하게 여러분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당신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2014년 4월, 당연히 구조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당신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바다로 가라앉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상실감, 무력감,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디긴 해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부족하긴 해도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 세상의 전제 자체가 허황된 것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이전과는 절대 같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당신들의 죽음 이전에도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문학의 무력함 또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학은 무력하기에, 다른 것과 다르게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라는 김현 선생의 말에 기대고, 위로받으며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죽음을 마주한 이후 무력하기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말이 때로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 늦게 깨달아서 ‘당신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단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2014년의 봄이 지나고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 여기 다 적을 수가 없음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당신들의 부모님께서는 우리는 그동안 승리해왔다고, 그 승리의 시간동안 우리가 함께해주셨다고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승리의 시간동안 제가 당신들에 부모님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사실과 당신들을 기억하는 일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저를 고백합니다. 부디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제 옆에는 당신들에게도 있었을 것이 분명한 소중한 친구들이 앉아있습니다. 오늘 이 친구들과 함께 당신들을 기억하는 행사에 참여하여 바람개비를 만들고, 종이배를 접고, 퀴즈를 풀었습니다. 또한 거리를 걸으며 날씨가 너무나 좋다고, 일년 내내 오늘 같은 날씨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추운 것이 싫다고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좋다니 ‘당신들이 살아있던 2014년에는 어법상 틀린 표현이었을 텐데’ 라는 참으로 저 같은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으며, 그리고 최근 읽은 소설의 문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조금은 궁금했습니다. 

 당신들이 계시는 곳에도 여름이 오는 지. 골목길이 있어 산책할 수 있는지. 그렇게 걷다보면 저녁이 찾아오는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는지.

 저는 삶 너머의 세계가 궁금한 만큼이나 그런 것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오늘만은 그 세계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기억하려는 저와 친구들과

당신들의 가족분들과 그리고 오늘 함께해 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당신들이 계신 그 세상까지 전달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흘러 삶 너머의 세계를 부정하는 제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 옆에 앉아있는 친구들처럼 당신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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