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고쿠라 여행
날이 적당한 어느 날, 메르스가 한창 유행하던 2015년 6월의 어느 날, 우리는 첫 모녀 여행이자 첫 일본 여행을 떠났다. 내가 공항을 가본 이래 그렇게 한산한 공항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메르스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감히 이륙하였다. 여행 가기 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공항에서의 식사를 즐긴 후.
몇 년 동안 언니와 나를 배웅과 마중만 나왔던 엄마는 너무나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에 무척이나 흥분해 있었다. 나도 창가를 좋아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기에 일단 엄마 자리는 무조건 창가. 그게 더 효율적이다. 엄마는 여행 내내 비행기에서도 버스에서도 창가에서 눈 한번 떼지 않고 잠 한숨 자지 않고 그렇게 모든 풍경을 눈 안에 담아내었다. 약 1시간여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후쿠오카 공항. 아담하고 조용했다.
우리의 여행은 6월이었고, 티켓팅은 1월에 했다. 시간이 매우 많았다. 원래 닥쳐야 후다닥 일을 처리하는 성격인 나는 천성적 게으름으로 숙소 예약을 미뤄왔다. 천천히 하나씩 해 나갔다. 회사 직원의 조언으로 인터넷에서 북큐수 3일 패스를 구매했다. 2월에는 마지막 3박째 숙소를 예약했고, 그리고 5월이 돼서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이세키가 잘 나오는 료칸에서의 1박!! 적당한 가격에 조식과 석식이 제공되며 프라이빗 야외 온천이 있을 것!!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유후인 시내에서 조금 먼 유노히라에 위치한 야마시로야에 예약을 했다. 자세한 얘기는 뒤에 가서. 여행 계획이 없다 보니 숙소를 도대체 어디에 예약해야 될지 몰랐고 대략적인 루트를 생각해 숙소를 예약해 나갔다. 첫날의 일정을 정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다 보니 어느새 여행 3일 전. 부랴부랴 호텔을 찾는데 세상에나... 이게 웬일!!! 방이 없어!!!!!!! 망했다... 후쿠오카 시내에 웬만한 호텔은 방이 없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하여 선택하게 된 고쿠라행. 후쿠오카 공항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더 가야 나오는 곳이었고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일어난 예기치 못한 일정이 생겨났다.
인터넷이 없어도 된다는 번역기를 다운받아 나는 용감하게 로밍을 하지 않고 여행을 갔다. 하지만 생각처럼 번역기는 잘 작동하지 않았고, 인터넷 없는 일본 여행은 꽤나 힘들었다. 조금 헤매고 돌아가기는 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합심하여 여차저차 찾아다니기는 했다. 셔터가 내려진 시장 골목길을 걸어걸어 지도를 보고 찾아간 우리의 숙소. 방은 좁지만 깔끔하고 아늑했다. 화장실은 큐브 같은 느낌. 일본 호텔은 화장실이 이렇더라. 이 외곽의 작은 호텔방을 약 13만원을 주고 예약했다. 그만큼 방이 없었다는 것.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벌써 9시가 다 되었다. 배가 고프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야타이'라 불리우는 일본의 포차 오뎅이 유명하다고 한다. 비쥬얼이 너무나 훌륭하다. 그곳을 찾아가기로!! 고쿠라는 조용하고 시골의 한적한 느낌마저 들었다. 가게들이 불은 켜 있으나 장사를 하는 건지, 사람이 있는 건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일본 오기 전에 로손 편의점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롤케익에 관한 글을 봤었다. 너무 배가 고파 가는 길에 보이는 로손에서 롤케익과 다른 빵을 하나 사서 빵을 우선 한입 물었다. 그 와중에 엄마는 오뎅을 먹어야 한다며 참겠다 한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밀가루를 참 좋아한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는데 어려 보이는 남자 점원이 우리에게 무슨 명함 같은걸 내민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말이 1도 안 통하는 것. 알고 보니 즉석복권. 행사 중이었나 보다. 결과는 꽝!! 재미는 있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험난한 여행의 서막을 알려주었다.
따라아~~안!!! 드디어 찾은 야타이!! 지도만 보며 여길 찾는데 이 또한 한참 걸렸다. 어둑한 거리를 위로 아래로 왔다 갔다 하다 겨우 찾은~ 감개무량하구나. 어떤 후기에 맥주 사가면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는 안돼서 살짝 민망할 뻔했다. 역시나 여기도 말이 안 통하니 손짓으로
알아서 주세요
사실 엄마와 나는 라멘도 시켜먹고 오뎅도 더 시켜먹고 싶었는데 옆에 일본 사람들이 다들 너무나 조금만 먹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 통하는데서 주눅 들고 쭈구리가 된 우리는 소신껏 행동하지 못했다. 지금도 못내 아쉽군.
지금 보이는 사진에 한 접시 더 시켜 먹었는데 먹느라 사진을 못 찍었네. 정말 다 너무너무 맛있고 종류별로 다 먹어보고 싶었다. 말이 안 통해서 가격도 모르고 막 시킴. 어찌 됐건 꼬치 메뉴 7가지에 오니기리 2개 해서 1150엔 나왔다. 개인적으로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며 의도치 않게 가게 된 고쿠라지만 가길 참 잘했다. 이 또한 가야만 했던 운명이었던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래도 여행 첫날인데 밥만 먹고 들어갈 수 없지 않은가. 마트라도 가야지. 그래서 선택한 돈키호테 쇼핑!! 도시가 정말 작은 건지 돈키호테도 걸어서 찾아갔다. 돈키호테를 가는 길은 더 어둡고 음침했다. 10대 청소년 남아들이 앞에서 담배를 피며 알짱알짱 걸어가는데 그것도 좀 무섭더라. 엄마랑 서로 신호를 보내며 옆길로 빠져 이번엔 거의 안 헤매고 무사히 돈키호테에 도착하였다. 숙소에서 먹을 간식과 내일 이동하며 먹을 당 충전용 초콜릿, 그리고 역시 1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이 막 쓰여있는 보조식품. 1380엔이나 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샀다. 왜냐면 많이 먹을 거니까~ 관리해야지. 그림만 보고 해석해서
아~~ 이건 먹으면 붓지 않거나 살이 빠지는 거구나!!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아마도 그것은 가르시니아였던 듯싶다. 여자의 직감이란, 용케도 알아보고 사 먹었다. 사실 이 여행을 위해 나는 5일간 풀과 저염 단백질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했고 2키로를 감량했으나 첫날부터 야식을 즐긴 결과 여행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눈이 작아지는 효과를 맛볼 수 있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휴족시간을 붙인 뒤 엄마는 지쳐 쓰러져 알딸딸하게 잠이 들고, 한 캔을 더 마시고서야 그 뒤를 이어 얼굴 빨개진 딸내미도 노곤한 몸을 이끌고 잠이 들었다.
좋구나~ 알딸딸~ 가벼운 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