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공기를 뚫고 따뜻하게 불어오던 봄바람에 피식피식 웃으며 걸어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더운 햇살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나의 일상도 루틴화 되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의 햇살부터 한낮의 여유로운 햇볕, 아직은 찬 밤공기를 온전히 느끼며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밖에서 맞는 계절의 아름다움은 자연을 사랑하는 나를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흐름은 나도 모르는 조바심을 불러다 주기도 했다.
토익은 1달의 기본반만 들었고, 무작정 문제를 많이 풀며 실전에 대비할 수 있는 실전반으로 옮기었다. 그리고 학원에서 그룹을 지어주어 문제를 풀도록 시키는 토익 스터디를 신청했다. 늘 받아오는 문제집을 풀고 가서 채점을 하기를 반복하며 조금은 더디게 올라가는 점수에 나도 모르게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던 차에, 해이해진 마음도 다잡겠다는 의지로 새벽반 학원 조교를 신청했다. 직장인들을 위한 아침 첫 타임 수업에서 조교를 돕는 대신 나는 한 과목의 수업을 공짜로 들을 수 있었다. 새벽 5-6시에 일어나서 나와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단어를 외우거나 숙제를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공채 서류 접수가 나기까지 내가 생각하는 모든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서는 좀 더 부지런히 살아야 했다. 점심시간에는 토익스피킹을 끊어 듣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중국어 4급 대비반을 끊었다. 그렇게 세워진 내 계획은 다음과 같다.
새벽 6-7시 : 이동시간 영어단어 외우기
혹은 짧은 파트 1-2/ 5-6 풀기
7-8시 : 조교 활동 + 아침반 문제 풀기
8-9시 : 토익 스터디 모임
9-10시 : 아침 먹기 / 토익 문제풀이 /
토익스피킹 숙제
10-11시 : 토익 스피킹
11-12시 : 점심 / 영어 면접 질문과 답변 정리
12-2시 : 면접 스터디
2-6시 : 중국어 공부 (단어, 복습, 문제풀이)
6-7시 : 중국어 수업
7-10시: 중국어 공부 / 토익스피킹 숙제
10-11시: 집으로 이동 /
이동시간 내에 토익 숙제 및 단어 외우기
12-2/3시: 면접 준비 및 단어외우기 문제풀이
(보통 공부를 하다 지치면 잠에 들었다.)
*일주일에 3번은 9시에 공부를 끝내고 건강관리 겸 체중조절을 위해 헬스장을 다녔다. 물론 운동을 할 땐, 중국어 단어 녹음을 듣거나 중국어 드라마를 들으며 운동을 했다.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숙제와 외울 것이 너무 많아 어딘가로 이동할 때에도 늘 손에서 단어장은 떠나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버스에서 이동하면서 내리기 전까지의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 풀기가 가능한 경지까지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바닥을 제대로 보고 걸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따금씩 허덕일 때, 가던 길을 멈추고 정면을 2-3초 응시하던 것이 내 유일한 쉼이었고 힐링이었다.
다행히도 말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던 나는 토익스피킹을 한 달만 듣고 끝낼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점수였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점수도 아니었다. 토익 스피킹은 시간제한 안에 조리 있게 말해야 하는 데 한국어도 천천히 말하는 나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아쉬운 마음에 시간제한이 없는 opic 강의를 한 달 듣고 시험을 보았다. IH 등급을 받았다. 이걸로 되었다. 나에겐 아직 중국어와 토익이라는 관문이 남아있기에 더 이상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중국어는 기초반을 듣고서 바로 4급 준비반을 들었다. 중국어 단어를 외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성조도 한자도 영어식으로 표기하는 법도 모두 외워야 하는데 다른 공부도 함께 병행하느라 중국어에만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머리를 급하게 많이 써서일까? 일시적으로 그 당시 흰머리가 힐끔힐끔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으므로 바로 4급 시험을 등록했다. 당연히 떨어졌다. 다행히도 커트라인과 별 점수 차이는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몇 개만 잘 찍으면 된다. 간당간당해도 좋으니 4급만 통과하자. 이것이 나의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