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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ubless Apr 02. 2020

12. 예승이의 아르바이트 원정기

  첫 번째로 들어간 곳은 글*이라는 이태원의 유명한 바(Bar). 시간 조율을 최대한 해주셨고, 주말만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이 공부에 지장을 덜 줄 것 같았다. 덧붙여 술에 관해 일도 모르는 나였기에 미리 칵테일 종류나 기내에서 서빙할 술들의 이름이라도 알아둘 수 있을 것 같아서 근무를 결정했다.


생각해보면 바(Bar)의 종업원으로 일하는 것이었지만, 승무원이라는 직업과도 많이 닮아있었다. 예를 들면, 일정하지 않는 근무시간 혹은 밤샘 근무라든지, 장시간 걸어 다니고 서서 서비스를 한다는 점 그리고 동시에 둠칫 둠칫 신나는 노래에 모두가 신나서 정신없이 떠드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잔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나면 소머즈처럼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재빠르게 깨진 잔/병에 대한 수습을 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나는 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과연 저녁 밤샘 근무도 감당이 가능한지. 유창한 실력은 아니지만 외국인과 소통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글*에서 일하는 동안 테라스에서 외국인 손님을 응대하는 것은 주로 내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주말 밤을 글*에서 검은 옷을 입고 내 귀에 찬 무전기에 집중을 하며 보냈다. 곁에서 잘 도와주는 동생들 덕에 그렇게 어렵게 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이는 만취한 손님도 슬리퍼를 신고 막무가내로 들어오려는 손님도, 이마를 콩하고 때려주고 싶은 진상 손님도 아니었다. 담배 냄새였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실내에서 노래 소음과 분위기 때문에 창문을 따로 열 수도 없는 환경이었기에, 밤새 갇혀서 남이 피는 담배 냄새를 맡고 있어야 하는 것은 곤욕이었다. 게다가 밤을 이틀 내리 새우고 난 월요일에는 공부하러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나의 건강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참고 지낼 필요는 없었다.


때마침 이태원의 중동 음식점 페**에서 사람을 구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사실 내가 외항사로 가면 사람을 많이 뽑는 중동 베이스인 곳으로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중동 음식점에서 일했다는 경력은 그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그곳은 사장님부터 요리사, 종업원까지 외국인이 많아 영어로 대부분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외국인 사장님은 매주 마지막 근무 때, 내가 다음 주에 가능한 시간을 물어서 근무표를 작성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으면서, 갑자기 생기는 면접에도 미리 양해만 구하면 탄력적으로 일정 조정이 가능했다. 이 점들이 내가 유럽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 곳에서 일한 큰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곳을 다니며 나는 중동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경험들을 미리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승무원’이라는 꿈을  바라보며 막연히 하고 싶다는 의욕만 있는 사람이 있거나 나에게 맞는 직업일지 잘 그려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양한 서비스직을 경험해보면서 자신을 시험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인 즉, 승무원이라는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나먼 타지에 가서 외국인 노동자로써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도 3년을 못 채우고 고국이 그리워 돌아가는 승무원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다. 입사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타지에서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어했던 모든 아르바이트 경험들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현재의 항공사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만약 현재 유니폼을 입은 자신의 예쁜 모습이나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갈 생각으로 준비를 하는 예승이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권한다. 비행은 비행일 뿐 여행이 절대 아니며, 이 직업에는 유니폼을 비행기에서 입을 수 있다는 만족감보다 더 특별한 나만의 이유가 필요하다. 다양한 서비스 직을 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승무원이라는 직업 앞에 붙일 수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서비스직을 하는 이유 혹은 서비스직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준비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아니라면 아주 어린 나이에 1-2년만 경험해 볼 것을 추천한다. 사실 특별한 나만의 소신없이 오랫동안 근무하기엔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운 직업인 것이 사실이다.


다시 ‘페**’의 식당에서 살짝 맛보기로 경험한 중동 문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선, 사장님의 다혈질적인 성격. 갑자기 화내고 돌아서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특징. 특히나 여성들에게 더욱 더 과정없이 화내고 소리지르는 것이 심한 듯 하다. 내가 현재에도 마주하고 있는 중동 사람들의 전형적인 성격이다. 그저 자신들이 움직이는 속도와 달리 성격은 매우 급하며 기복이 심한 편이다. 겪어본 결과, 처음에는 무턱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에 대해 무례하게 느껴져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나만의 대처 방법이 생겼다. 사장님에게 농담처럼 뼈 있는 말로 화를 웃으며 되받아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 덕분에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줄었고, 지금도 휴가를 나가면 이태원을 지나는 길엔 꼭 들러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음식!! 예전 상도 받은 적이 있다는 누르(Noor)의 음식은 최고였다. 원래부터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맛있는 음식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적당히 느끼하며 고기가 많이 들어간 중동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사실 막상 승무원으로 두바이에 살게 된다고 해서 중동 음식을 매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내식이나 주변 식당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중동 음식이 내 입맛에 잘 맞는다면 타지에서 적응하는 몇 달을 조금 더 재미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중동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며 다가올 여름을 준비했다. ‘유럽 여행 겸 인터뷰 원정기’는 늘 재수 한 번 하지 않고 시간에 딱딱 맞춰 정도만을 걸어오던 나에게 아주 크나큰 도전이었고, 29살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승무원’이라는 어릴 적 꿈을 위해 뭐든 다 해 볼 수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하니 두려움도 컸지만,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차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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