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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세 Aug 18. 2021

퇴사를 했다

'프로덕션으로 가지 않겠다'라고 생각하고 졸업 후에야 '언시'라는 것을 보며 방황하고 나를 탐구하며 지냈던 시간, 그 종지부를 찍었던 첫 회사를 퇴사하고 나왔다.

근 2년 간 밤잠이 많았던 내가 4시에, 5시에 일어나게 했던 그 시간들은

분명 많은 자양분이 되었겠지만 심적으로는 참 많이 힘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변화한 내 모습이 내가 원했던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퇴사 후 4주가 아직 안 지난 오늘, 다시 정리하는 이유는

퇴사를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중요하고, 내게는 '퇴사의 이유'가 명확하고 뚜렷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1. 'TO BE'가 없다

 나는 언제나, 나의 롤모델이 한 집단에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작은 단서라도 있어야-'아 그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단서-라도 있어야 그 집단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되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집단의 느낌이고 이미지다. 그 집단을 떠올렸을 때, 가장 얼굴이 되는 사람이  닮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내가. 내 인생의 가장 밝은 날을 허비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사 후에는 오히려 빛을 보지 못하는(집순이)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 내가 더 밝고 긍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그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널리고 널린 게 '리더십' 책이다. 퇴사하며 선물을 고르면서, 정말 오랫동안 매대 앞에서 고민했던 책들이 있었다. 팀장의 자격을 논하고 가르치는 책들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상관하고 싶지 않아 같은 시기의 퇴사자들에게만 응원의 책을 골랐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아, 그 사람한테 왜 내가 책까지 사줘야 하나'와 '그 사람은 저걸 읽어도 '나 엿 먹이려고 책 준 애'라는 생각밖에 안 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쇠퇴/몰락하는 집단의 전형적인 예

: 구시대적 마인드, 구시대적 발상, 고여있는 역 피라미드 구조

 '고인 곳에 있으면 썩는다'는 말처럼, 절대 변하지 않는다. 위층이 바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 '절대'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고, 1년이 다 되어갈 즈음에는 '설마'로 변했고 퇴사 6개월 전에는 '역시'로 변했다. 고여있는 층에서 변화할 생각이 없다. 아, 변화할 생각이라는 것은 SNS를 만들자! 가 아니다. 콘텐츠의 질과 더 높은 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디자인'적 마인드를 얘기한다. 전혀 없다.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일을 벌일 때는 명확한 로드맵과 시장 리딩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건 ㅈ도 없으면서 하라고 던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본인만 회사를 생각해서 일을 벌였다고, 히스테릭하게 군다고 사람들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다. 먼저 본인이 난리를 치지 않으면- 미안해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 일과 언어는 별개의 문제다. 구시대적 발상을 하는 사람이 'OK'를 하는 위치에 있으니 다 반려당할 수밖에.

 역피라미드 구조의 중소기업들은 거의가 그렇다. 일당백을 하는 사람이 위에 있으면 괜찮다. 그런 사람은 그냥 1인 기업을 해야 한다. '회사'는 여럿이 만든다. 믿을 수 있는 집단이 골을 정해서 프로핏을 창출하는 일이다. 

단 한 명일 경우에는 달라지는 이야기지만... 대표가 '나만 일한다' '나만 잘하고 나만 잘났어'라는 생각을 하는 재앙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대표라면 본인이 최고 꼰대+몰락을 이끌고 있는 리더이니 잘 생각해보시길. 시대의 트렌드를 공부하지 않는 자라면 대표가 되어 생기는 많은 리스크를 계속 쌓고만 있는 것이다.


3. 최악의 막말 "야, 망할 X, 나가 죽어"

 사실 이건 고소해야 한다. 퇴사한 많은 이들이 생각했던 일들이고, 현재도 근무하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저런 말들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핑계고, 고칠 생각이 없다.

후배한테 욕하는 게 당신의 주 업무라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물론 일 못하는 인간들도 정말 많다. 실제로 일도 못하는데 꼰대 짓까지 하면 더 답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제일 기본이다.

'도제식'업무 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머릿속으로 댔다면, 당신은 이미 개 꼰대라는 뜻이다.

 알바가 끝까지 안 구해져서, 결국 담당자(였던 팀장의 팀이었던 우리)들이 돌아가면서 알바를 하게 된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때는 그 시간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실수보다, 옆에서 후배에게 막대하는 그 막말들이 너무 심했다. 나 같으면 당장 내일부터 안 나왔다고,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을 만큼 그 사람이 최악으로 보였다. 그 이후에, 구해지기 전까지 오디오 알바 담당자였던 내 팀장은 옆에서 '왜 이렇게 알바가 안 구해질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 번은 물어보길래, 전날 야간 근무(그것 때문에) 했던 나는 명확하게 얘기했다. 


"어차피 어디 가도 같은 시급인데, 나한테는 아니더라도 막내들한테
그렇게까지 쌍욕하고 난리 치는 걸 봐야 하는 알바를 뭐하러 해요?"


라고 했더니, 그건 아니고, "요즘 애들이 인내심이 없어서"라고 하더라.

아, 그 팀장님은 그래도- 제일 - 그 고인 물 중에 가장 나은 분이었다.

참 슬펐다. 참 좋은 사람인데, 그 생각의 틀이 너무 좁아진 사람이라, 나름대로 가장 트여있고 리즈너블 한 분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집단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막말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는데, 하나가 더 있다. cs분들을 참 존경한다. 회사로 매일 오는 전화 중에 90대, 80대, 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는데 10%를 제외하고는 반말과 막말, 아가씨, 야, 너, 등... 야 걔 여자애 바꿔 등의 막말이 넘쳐났다. 최악이었다. 그 회사는 그걸 막아줄 생각이 없다. CS 부서를 따로 운영하던가. 심지어는 그런 말도 들었다. 너한테 주는 월급이 아깝다고. 잊지 않는다 그 목소리. 심지어 어도비를 깔지 못해 욕한 거였다. 크롬이라는 어려운 걸 처음 들어서도 포함해서. 


4. "우리가 어딜 가겠어, 가봐야 거기서 거기지-"

 같은 팀장님의 이야기다. 입사한 그날부터 '이 회사는 이상하다'라고 생각하고 퇴사를 고민했지만, '도망쳐야 해'라는 생각을 했던 첫 번째 대사다. 이 발언을 듣자마자 생각했다. 

"당장 도망쳐야 해, 이렇게 고립될 수 없어"

 본인의 한계를 지어버리는 상황에 처하는 게 가장 나쁜 도태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여기였다. 먼저 한계가 여기이고, 나는 여기까지인 삶. 30대에 벌써 그렇게 지어버린 그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물론 맞다. 나는 경제채널에 있었고, 경제채널은 한정적이다. 거기서 거기일 수는 있으나 거기서 거기가 아니도록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더 나은 삶을 여기가 아니라 바운더리를 넓히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 자체를 생각하는 게 힘든 집단이라면 나와는 다른 집단인 것이다.

 실제로 무슨 말을 하든 거의 그런 반응을 보여주셨다. 참 이뻐하셨지만, 그 와중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너는 대단하다, 역시" 등의 말을 들을 때면 갸우뚱했다.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아가고 싶다면, 나의 리미트를 현재로 못 박는 삶이란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면서 리미트 = 현재 인 삶이 과연 옳을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5. "급여의 10%, 30%를 우리 회사 코인으로 주겠다"

 아, 나가라는 뜻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이다. 정말 불법이다. 법이 없어서, 물론 법은 있지만 무법지대라 회사에서 그렇게 주고 문제 될 것 없다고 싸워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불법이다.

2018년의 회사의 큰 사업은 코인이었다. 팀장급 이상은 무조건 30%를 코인으로 받아야 하고, 임직원들에게는 10%, 혹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해두었다. 미친놈들이다. 누가 최하락장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쓰지도 않는 회사 코인으로 지급받을까? 슬프지만, 실제로 그렇게 됐다. 10월 급여부터.

강제로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 = 코인 지갑 주소를 본인이 각 사의 지원실로 붙여 넣기 해서 보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 팀장급들이 안 받는다고 하니 강제로 하라고 내려왔다. 그날은 점심시간까지 모두... 다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미친 게, 그 코인을 쓸 수 있는 곳은 회사 내 카페테리아, 식당 밖에 없다. 커피 한 잔에 500원, 식사가 1000원이었는데, 그 두 개를 회사 코인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밥값과 커피값이 바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아무도 안 살 테니-쓸데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펌핑해야만 가능한 코인판에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

최악이었다. 그날은 팀장님들이 가장 안쓰러워 보인 날이었다, "나 아직... 와이프한테 말 못 했다..."라는 말이 정말로-인간적으로 슬펐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퇴사의 가장 큰 이유인 이 다섯 가지가, 내 오피스 라이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깨달음이 있다면 더 있지만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은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과 일하는 건 괴로워"였고,

가장 큰 깨달음은 "나이만 든다고 어른이 아니다"였다. 

매일 입 끝에 걸려 있던 말은 "AH...SSI BAL...."과 "AH...DDO..."였다.

생산적이고 괜찮은 삶을 고민하는 내 앞에, 매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실망감, 지친 모습이 보일 때마다 고민했던 것 같다. 과연 나는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일까. 답은 NO였다. 내가 상사가 된다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퇴사 후의 삶은, 나 같다. 평화롭고, 생각할 시간이 있고... 공부할 시간도 있다.

나 같음과 나 다움이라는 건, 비록 거지가 될지언정 변화를 무서워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 같기도 하다.


2018년 10월 5일의 퇴사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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