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는 진짜 예민해서 어떻게 산대'
예민한 감정은 어디서 올까를 한참 고민한 기억이 있다.
주변에서 유려하고 부드럽게 인간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자면 부럽고도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 순간이 있더라. 불쾌한 일을 불쾌하지 않게 부드러운 말로 잘 넘기는 사람.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나를 그저 불만스럽고 툴툴거리며 투덜대는 인간으로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첫 회사에 입사한 첫날, 첫날이니 국장님이 회식을 제안했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선배들에게 사회생활 꿀팁을 물었다. 어느 누가 술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 잘못된 일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 돼. 그리고 난 정확히 그다음 날부터 잘못된 일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한 선배가 있어서. 그 순간부터 불편한 것을 말한 사람이 되는 상황이 잦아졌던 것은,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해야 할까, 나의 천성이라고 말해야 할까.
'예민한 애'라는 꼬리표는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다녔다. 기숙학원에 살 때 수능 두 달 전부터 나는 이명과 외이도염을 앓았다. 아침, 점심, 저녁, 산책 시간 등 수시로 울리는 마이크와 스피커의 '삐-' 소리의 아래 깔리는 음파가 들려서 괴로웠다. 학원에서는 거의 한 달쯤 지나서야 나를 병원에 가도록 허락해줬다. '예민하다'는 말을 한 백 번쯤 듣고 나서야 상황이 심각함을 알아차렸다. 조금만 아파도 어떤 곳이 아픈지 알고, 생리통은 몇 배로 크게 느끼는 사람이 나여 버려서 '아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할까'를 그때쯤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예민이 기민으로 바뀌는 순간은 회사에서 그 예민함이 장점으로 발휘될 때다. 예를 들면 자막에서 오류를 발견해서 나가기 직전에 바꾼다거나, 영어 원문을 내보내는데 잘못된 것을 보낸다거나, 코드를 잘못 썼을 때 알아본다거나. 생방송에서 일하면 예민한 사람은 그 방송을 하는 시간 내내 온몸에 있는 세포들이 깨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모든 것에 예민해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진다.
내가 퇴사할 때 모두가 말했다. '그 사람'의 냄새 때문이냐고. 예민함의 끝에는 냄새가 있었다. 원래도 향을 좋아하는 나는 향수를 좋아해도 많이 뿌리지 않는다. 향수가 많은데도 빨리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조금만 뿌려도 하루 종일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부서 이동으로 같은 팀에 '그분'이 강림하셨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가 코 끝에 맴돌아서 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그분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해서,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마시고 기침도 팔로 막지 않고 했다. 대놓고 아무도 말할 수 없어서, 본인의 냄새가 어떤지 정말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말 건물 내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그분의 냄새가 심했는데, 덕분에 나는 한 해 내내 부서 사람들의 모든 선물을 향에 관련된 걸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싶지 않고 꼬인 심리를 이해하고 싶지 않아 사람을 멀리 대한 적이 있다. 어릴 때는 오히려 남의 시선을 참 의식하고 살지 않았다. 사춘기 때 여드름이 온 얼굴을 덮어버린 날, 엄마가 걱정되어 물은 적이 있더랬다. '학교 안 가도 돼'라고 했는데 '왜?'라고 대답해서 놀랐다고. 놀림받거나 남들이 뭐라고 할까 봐, 내가 상처 받을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다. 씩씩하게 학교에 가던 내 뒷모습을 보면서 '쟤는 참 남 시선을 신경 안 쓰는구나' 했다고. 언젠가부터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이는 나'를 더 신경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몸매부터 옷, 화장, 말투, 언어... 모든 것이 불편해진 순간부터 그곳에 존재하는 나까지 부정하게 되었다. 그 부정적인 생각은 사람을 대할 때도 모든 것을 고려해보는 잘못된 습관을 가지게 만들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그 관계가 나빠질까 봐, 밀어두면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어렸을 때부터 꾸던 꿈을 꾸면서 한국을 떠날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나 예민해서 더 이상 못 살겠어' 였던 것 같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행복했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나날들도 뒤로하면서. 그리고 한 일 년 정도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뉴스를 뒤로 미뤄두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를 새로고침해야 했던 시기에 불특정 다수의 모든 댓글과 어투의 불쾌함을 나는 견딜 재간이 없어서, 영어는 내가 모르니까 덜 불편하리라고. 이직이 아닌 유학을 택한 이유였다.
나와 같이 예민한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조금 예민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은 부분에도 공감하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다 보면 떠나온 게 잘한 일이지 않을까. 개인적인 삶과 생각을 존중하는 문화에서는 참 뭉쳐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여러 생각을 존중한다. 문득문득 코로나로 인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클지라도, 매시 매초 불편함을 감수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지점에서 아직 나는 행복하다. 천천히 무뎌지지 않을까, 예민한 말을 얼마든지 꺼내도 행복한 곳이 어디든 존재하니까. 공감하는 능력이 커서 예민한 사람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포용해주지 못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