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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May 22. 2020

무서운 한국 여자가 돼 버렸다

타인에 눈에 비친 나는 참 다양하다

나라는 사람은 졸졸 흘러서 여울이 됐다가 개울이 됐다가 연못이 됐다가 가끔은 하수구도 되는데 그러다 문득 바다를 만나기도 하는데 나를 정의하는 말들은 초라한 돌무더기처럼 그곳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미 그곳에 나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를 정의하는 말은 압정 같아서 찌른 자리를 굳건히 지킬 뿐이었다.     


책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중에서     






한국 여자, 무섭다고??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조금씩 환해지기 시작하는 아침의 대만 거리를 산책하고 있는데, 전날 알게 된 대우가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항 가기 전, 냄새는 지독하지만 맛있는 걸 같이 먹자고 했다. 숙소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하면 11시쯤이 될 테니, 그쯤 보자고 답장을 보냈다.  '디파짓 DEPOSIT을 받고,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하면 대만에서의 시간도 끝을 맞이하겠구나'하면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만의 거리를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체크아웃 수속을 밟는데 필리피노 직원과 내가 디파짓의 액수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결국 그녀의 상급자가 개입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지루한 실랑이 끝에 CCTV를 보자고 했다. 필리피노는 PC 앞으로 이동해서 영상을 찾기 시작했는데, 찾을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여러 번 PC를 재부팅하고 있는 모습만 지켜보게 됐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러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황을 그만 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상급자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남기겠으니, 해당 영상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상급자는 나를 믿는다고 했다. 그러니 전부는 아니지만 얼마를 더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다소 걸리긴 했지만 결국 디파짓 명목으로 낸 돈을 다 받아냈다. 필리피노는 상급자에게 본인이 그 돈을 충당하겠다고 (내 앞에서) 말했고, 나에겐 I AM MAYBE SORRY라고 사과를 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됐다.







리셉션에서 벌어진 이 모든 걸 앉아서 지켜본 대우는 요 근래 호스텔에서 계속 도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고, 그녀가 범인으로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한 번도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은 필리피노가 수상쩍다고  입장을 지지해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아니했으면 좋을 말을 굳이 덧붙였다. 한국 여자, 무섭다고. 나는 처음 들어보는 무섭다는 수식어에 당황했다. 하지만  태연한 척하며 중국 여자가 제일 무서운 거 아니냐고 반문을 했고, 대우는 일본 여자가 제일 순하다고 정리를 했다. 어쩌다, 내가 무서운 한국 여자가 된 사연이다.  냄새는 고약하지만 맛이 끝내준다는 취두부를 못 먹고 대만을 떠나게 된 사연이기도 하다.









   


나는 부자이기도 하다


눈이 부신 날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사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스리랑카에서의 시간이 더 소중해지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숙소가 될 곳에서 방을 배정받고 짐을 정리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근데, 다른 침대를 쓰는 여행자가 엎드려서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지만 인사를 나누며 본 그녀는 긴 생머리에 호감 가는 외모였고, 다소 화려한 점프 슈트를 입고 있었고, 그리고 무슨 사연인 지는 모르겠지만 이 화창한 날 어두운 방에 누워 있는 선택을 한 동남아의 여자 아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는 호감보다 비호감 쪽이었다. 거기에 매니저가 알려준 필리피노라는 국적까지 한 마디로 첫인상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였다.



애들린에겐 미안하지만 그녀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캐리어에 방치해 놓고 있던 자물쇠를 꺼내는 일이었다. 번거롭지만 나는 매번 그 자물쇠를 풀고, 잠그는 일을 반복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마음이 죄스러우면서도 또 안 해도 되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이 거듭되니까 그녀가 괜히 미워지려고 하는 시간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은 언제부터 허물어졌을까. 그녀와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허물어졌겠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이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한 시간으로 충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한 밤만 자면 나의 원래 자리인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애들린과 사장님, 그리고 내가 익숙하면서도 편안하게 같이 있었다. 꽤 긴 침묵을 깨고 사장님은 내게 지난 두 달간의 여행지 중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물었다. 스리랑카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정부 기관에서 근무하다, 최근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이었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로 우린 가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다 생경했고, 그래서 잊히지 않는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을 했다.


-미얀마의 인레 호수가 정말 좋았어. 현실 같지 않다는 생각을 얼마나 여러 번 했는지 몰라. 너무 아름다워서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레호수




계춘 할멈이라는 영화였다. 손녀가 할멈에게 그렇게 "바다가 넓어. 하늘이 넓어?"라고 질문을 했다.  내겐 그렇게 당연한 걸 뭘 물어 같은 느낌이었는데,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할멈은 영화 말미에 하늘을 담고 있는 바다가 훨씬 넓다고 했다. 하늘을 담고 있는 바다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고울 것 같았다. 근데 인레 호수에서 그 명장면을 보게 됐다.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는, 망망대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호수 위에서 화보의 한 장면처럼 인따족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의 표면에 얼핏 얼핏 흰구름이 보였다. 그 호수를 따라 시선을 멀리멀리 두면 '진짜' 하늘이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호수, 그리고 그 위에 티끝 같은 존재감으로 내가 탄 작은 배가 있었다.  나는 그 시공간 속에서 하늘을 담고 있는 호수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 그래서 얼마나 가슴이 먹먹해질 수 있는 지 낯선 나를 만나고 있었다. 동시에 이 아름다운 순간을 혼자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슬펐다.  




인레호수



 그렇게 여행 얘기는 한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졌다. 그때 체크인을 하려는 투숙객이 나타났다. 사장님은 본연의 업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나는 애들린과 남겨졌다.



주거니 받거니 여행 얘기를 나눌 때, 그저 듣기만 했던 애들린이 입을 뗐다.


너 두 달 넘게 여행 중이니?



그리고 이어진 애들린의 말은 "너 부자구나"였다. 마치 무임승차를 한 것마냥 불편해지는 뉘앙스였다.




대답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이런 순간이 아닐까. 나는 확실히 필리피노 입장에서 보면 부자였다. 그녀가 처음 접해본 카레와 난을 나는 오래전 한국에서 인도에서 먹어보았고, 별이 붙은 미슐랭 레스토랑도 가 봤고, 육해공 콘셉트의 3층짜리 호텔 도시락도 먹어 봤다. 또 그녀가 어쩌면 평생 꿈만 꿀지도 모르는 미국, 프랑스에도 다녀왔다. 그녀가 3년만 일하면 고국으로 돌아가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그리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있는 연봉은 내가 사회 초년생 때 받은 액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내가 부자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부자라고 말하게 될 거 같지 않은 한 마디로 한국에서의 난 부자와 거리가 멀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부자가 돼 버렸다. 거짓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진실도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그리는 부자와 그녀의 부자가 너무나 다른 개념에서 시작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담담하게 "부자는 아니지만 두 달째 여행을 하고 있긴 해"라고 대답을 했다.



애들린과의  대화를 복기해봤다. 비행기를 놓치고 쿠알라룸푸르로 공항에서 하루 노숙하다 스리랑카에 입국한 사연, 매번 숙소 앱을 통해 숙소를 잡다가, 연이은 유럽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예약 없이 이 숙소에 숙박하게 된 사연,  망 이나살, 졸리비,  SM, 악명 높은 마닐라의 치안과 같은 필리핀에 관한 것, 사장님을 비롯해 같이 만난 사람에 관한 것......그러다 그녀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 생각났다. 콰타르로 넘어가면 만나게 될 친구 이야기였다. 매번 새로 산 명품 가방을 페이스북에 업로드하는데, 보기 불편하다고 했다. 자기는 그렇게 고가의 가방이 왜 필요한 지 모르겠고, 실제로도 하나도 소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소개팅도 해주겠다고도 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아주 괜찮은 남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종교를 물었다. 나는 미션스쿨을 다녀서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안 간지 꽤 오래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럼 소개팅은 좀 어렵겠다고 했다.  또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사장님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님이 애들린과 연락이 되느냐고 물어왔다. 안부 인사를 남겼는데,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애들린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나에게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참 후, 그녀는 뤼이비통 가방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독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거기엔 1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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