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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May 01. 2020

오사카 다녀왔다고, 왜 말을 못하니?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다녀온 여행지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 대답을 보류했다.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왜냐면 불매 운동이 잦아들고 있을 때쯤, 오사카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일본어 새벽반, 등록   


일본어를 배우고 싶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내 멘탈을 흔드는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답이 안 나오는 문제들로 내 머릿속이 어지럽고, 혼란한 시기, 나는 그 시기를 견딜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보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 흘려보내야 하는 것을 흘려보내지 못한  시간만 낭비하는 게 더 싫었다고 할까. 그렇게 일본어 새벽반을 등록했다. ‘4개월 과정의 초급 단계를 통과하면 일본 여행을 다녀와야지’ 하고.











새벽반을 다닌다는 건



회사를 다니면서, 새벽반을 다니는 건 꽤 도전적인 이었다. 우선, 일찍 일어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시차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또 회사 일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중요한 발표를 앞둔 날, 출장 가는 날, 술을 늦게까지 마신 날(이건 친구들이랑 마신 것 같다) 암튼, 그렇게 중간중간 결석과 지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진급 시험을 통과하며 초급반, 중급반, 회화반까지 올라갔다.


      

뜻대로 안 되는 인생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동사 보통형을 배울 때쯤 일본 불매 운동이 불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길은 점점 거세졌다. 예매한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SNS에 인증하는 것이 바람직한 한국인의 모습인 비쳤고, 인증샷을 올리면 치킨, 피자를 무료로 주는 마케팅도 기승을 부렸다. 더 나아가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갔다는 이유 만으로 뒤통수 사진이 온라인에 게재되는 마녀 사냥도 일어났다. 그렇게 내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   








차고 넘치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다녀올 이유는 차고 넘쳤다. 나한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계속 이어갈 동기를 만들기 위해, 가고 싶으니까, 또 900원일 때 환전한 엔화도 좀 있었고, 비행기 값도 저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불매 운동,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다 지난 11월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나의 오사카 여행은 대외적으로 밝힐 수 없는 떳떳하지 못한 여행이 돼 버렸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나는 평소부터 가능하면 일본 제품과 국산 제품이 있을 때 한국 제품을 구매했다. 한국 제품의 성능이 조금 떨어져도, 조금 더 비싸도 그랬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렇게나마 알리고 싶어서였다. 핵심 부품까지 따지면 아예 안 샀다고는 말 못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대안이 있을 때 일본을 최우선으로 제거했다는 것이다. 근 십 년 일본을 여행하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일본 불매를 외친 개그맨이 닌텐도 인기 게임을 플레이하는 영상을 업로드해서, 이중성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꾸준히 불매를 했지만 불매 운동이 진행 중일 때 일본 여행을 다녀온 나는 그에게 동정표를 던져 본다. 왜냐면 세상엔  비난할 일이 그것 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엄연히 리콜되는 제품이 국내에선 결함이 있는데도 버젓이 팔리고, 언론에선 기사화 조차 안 되는 것에 분개해야 하고, N번방이 이슈가 되고 있는 데도 근절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제도가 재정비되지 못하는 것에 목소리를 내야 하고, 풍요의 시대, 지구촌 어딘가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물건을 사고, 안 사고, 여행을 가고, 안 가고 가 아니라 일본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고, 더 나아가 기부를 하면서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그런 건설적인 방향으로 목소리가 모아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맥락이 생략된 채 단편적인 것만 보고  비난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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