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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Oct 17. 2020

이탈리아에서 산 프라다를 2년만에 들고 나갔다

그리고 중고 명품샵에 중고가를 의뢰했다


피렌체 새벽 풍경



이탈리아에서 프라다를 샀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친구가 물었다.


- 아웃렛 갈 거야?

- 가면 사고 싶을 거 같아서, 안 가고 싶어.


진심이었다. 시각적인 유혹에 약하다. 보지 않으면, 갖고 싶지 않고, 그럼 지출도 없다. 나는 나를 알기에 '진짜' 안 가려고 했다.


나폴리에서도 그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피렌체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확실히 결정을 해야 했다. 친구가 다시 물었다.


- 너 진짜 안 갈 거야?

- 지금 안 가면 영영 못 갈 수도 있겠지? 가서 구경만 할까?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엄청' 그리고 애초에 나의 자제력은 그렇게 견고하지 않다. 나폴리에서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했다. 바지 호주머니에 넣은 스마트폰을 '쓱' 가져간 거다. 행인이 "be careful"로 주의를 줬는데도 그 당시엔 전혀 눈치 못 채고, 폴리스 리포트 Police Report를 작성하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소렌토 낯선 거리에서 경찰서를 찾았고,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과 수화기를 통해 진술을 했고, 폴리스 리포트를 발급받았다.  그날의 불운은 다 경험한 줄 알았다. 아니, 바랬다.  근데 그날 피렌체 가는 열차 - 미리 예매해서 9유로에 예매한- 까지 놓쳤다.  무려 70유로를 내고 3분 후, 출발하는 열차를 예매했다. 플랫폼 위치도 모르면서 말이다.  인쇄된 출발시각을 보고,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 열차도  놓칠 뻔하다가 겨우겨우 행인의 도움으로 열차에 올랐다. 피렌체 호텔을 미리 예약 안 해놓았으면 하루 더 나폴리에 묵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참고로 내 스마트폰은 우리나라의 굴욕적인 통계 자살률 1위 타이틀을 가져간 리투아니아 아이가 훔쳐 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스마트폰 도난으로 인한 보험 처리를 하는데, 국제통화요금이 80만 원이었다.  발신번호를 추적해보니, 리투아니아의 특정 번호로 여러 번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여행 중엔 스마트폰은 잘 사수해야 한다. 안 그럼 아주 골치 아파진다. 물론 통신사의 과실이 인정되어서 그 80만 원은 내가 물지는 않았다.)  암튼, 여러모로 사건사고가 많았던 나폴리였지만 갑자기 분출한 화산재로 한순간 잿더미로 변한 마을 폼페이의 허망하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도 좋았고, 클린턴 대통령이 찾았다는 피자집에서 맛본 피맥도 지금까지도 넘버원으로 꼽을 만큼 최고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굳이 안 겪어도 좋았을 추억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상세히 적는 건 이 일이 없었더라면 불필요한 소비 역시  하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더몰피렌체


그런 상황에서 아웃렛에 갔고, 대기표 뽑아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찌와 프라다 두 개만 겨우 봤는데  환했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원래 출발하려고 했던 시간을 2시간이나 연기했고, 그 결과는 내손에 들린 가방 2개, 신발 1개였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로 600유로 이상 결제하면 추가 20%를 할인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 밝혀도 되지만 굳이 밝히는 '불편한' 진실은 행사만 아니었더라도 안 샀을 그 가방을 2018년 11월 여행 다녀온 후, 거의 2년이 지난 이제야 개시를 했다는 것. 오늘은 그 가방에 관한 이야기다.




중고명품샵




중고명품샵에 프라다 중고가를 의뢰했다


그 프라다 가방 메고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다. 근데 바로 건너편에 중고명품샵이 보였다. 마침, 그날은 이탈리아에서 구입한 프라다 가방을 다시 말하지만 2년 만에 처음으로 들고 나온 날이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중고명품샵을 처음으로 방문해 보기로 했다.  요몇년 미니멀리즘에 꽤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이 가방 감정받고 싶어서요.


안내대로 가방 안의 내용물을 다 꺼내고, 블랙티, 그린티, 아메리카노... 무료 음료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는 판넬을 가리키는 점원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렇게 중고 명품들이 사방을 메우고 있는 매장에서 다채로운 중고 명품을 구경하면서  내 명품 가방의 감정가를 기다렸다. 정가와 실제 판매가가 적혀 있는 가격택에 시선이 갔다. 대부분 거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 중이었는데, 거의 새 제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상태가 좋았다. '어쩌다 이 가방들은 이곳에 놓이게 되었을까? ' 궁금해하며 명품들을 보는데, 이상했다. 백화점, 면세점 그리고 아웃렛 매장에서 활활 불타오르던 내 소유욕이 이상하게 잠잠했다. 갖고 싶지 않았다. , 미니멀리즘에 근접하고 있나?



잠시 후,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원서로 된 디자인 책이 네댓 권이 책장에 놓여 있었다. '고급'의 이미지를 추구하지 않았을까, 싶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상담이 시작됐다.  점원은 현금이 급한 경우라면 30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모서리 부분의 마모가 전혀 없고, 거의 새 것 같은 상태지만 인기가 많은 블랙 컬러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격이 조금 낮아졌다고 부연 설명했다.  오늘 사실 처음 멨다는 사실을 안 밝힌 채 생각보다 훨씬 얼마 안 나오네요,라고 말했다. 점원은 더스트백이 있으면 3만 원을 더 쳐주겠다고 했다. 고작 33만이라고? 내가 쇼핑하는 데 들인 시간과 지금껏 내 방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2년의 시간이 고작? 대실망이었다. 그녀는 곧이어 위탁 매매를 소개했다.  인터넷으로 시세를 검색해보는 직원,  검정 컬러는 95만 원까지 판매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18%의 수수료를 제하면, '정말' 잘 팔리면  70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여행 다녀온 직후, 내가 산 가방을 백화점에서 절반 세일해서 100만 원 쩍 넘는 가격에 판매되는 걸 봤는데, 그때가 오버랩됐다. '저 가방 하나 가격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가방 2개와 신발 1켤레를 '득템' 했구나. 만약 정가에 구매했다면, 비행기 값과 숙소비가 세이브되는구나. 돈 벌었구나' 하면서 뿌듯해했었다. 근데 2년이나 묵힌 걸 보면 지금은 때 지난 유행어를 빌리자면  'stupid' 그 자체가 다름 아닌 나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 해야 했다. 근데 중고 매장에선 또 절벽만큼 '뚝' 가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샤넬을 사면 달라지려나? 매해 가격이 올라서 샤테크라는 불리는.... 이 와중에 샤넬은 당최 말이 되냐고. 이 말도 안 되는 의식의 흐름 끝에,   명품 중고샵에서 공짜 커피를 마시고 나오게 됐고,  나는 더 이상 가방을 사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다. 근데 다시 이탈리아를 가게 된다면, 미국에 가게 된다면, 나는 과연 빈손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그건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다. 다행인 지 우선은 코로나19로 당분간 여행을 떠나기 어려울테니까,  유럽과 미국만은 예외로 해야겠다, 고  다짐을 조금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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