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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Oct 04. 2020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절한' 친절함을 대하여



애초에 완전한 동그라미는 없으며 이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자크 라캉 Jacques Lacan

     



100가지 메뉴의 스리랑카



100개는 될 법한 메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육류만 해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까지 취급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해산물까지 다루고 있었다. 대표 메뉴를 전면에 내세운 세 가지를 넘지 않는 단출한 구성을 좋아하는 나는 무엇을 골라야 할까에서 이 방대한 식재료를 어떻게 관리할까, 라는 호기심으로 관심사가 옮겨가는 걸 느끼며,  고심한 메뉴를 주문했다.

         

“치킨 스테이크랑 맥주를 주문할게.”     


2-3 분이 지났을까. 직원은 빈손으로 테이블로 왔다.

     

“재료가 소진됐어. 다른 걸로 주문해.”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녀는 내게 말을 했다. 다시 주문을 넣었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것도 지금은 어려워. 다른 메뉴 골라줘.”     


그렇게 하길 서너 차례, 메뉴 100개의 비결은 허무할 만큼 시시했다. 그건 ‘안 되면 말고’였다.  가전제품, 통신사 가릴 것 없이 고객 센터에 전화만 걸어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들을 수 있는 나라에서 온 나는 이 쿨하다고 해야 할까, 무책임하다고 해야 할까,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경계에서 애매하게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계산하려고 돈을 냈다. 수중에 있던 유일한 지폐 1,000 루피를. 한국으로 치면, 오만 원쯤 되는 적지 않은 화폐 단위였다. 직원은 돈을 들고선, 계산대로 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손 위에 놓인 건 거스름 돈이 아닌,  1,000루피였다.

      

"거스름돈이 없어."      


‘무슨 상황이지?’ 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게 끝이었다. 동행자였던 E가 돈을 꿔주기로 했다. 동행자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고객인 내가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잔돈을 구해야 했을까?  난감한 상황이 될 뻔했던 순간이었다.  숙소 사장님의 추천을 받은, 그래도 꽤 유명한 스리랑카의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동자의 권리도 존중받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생활을 시작, 십여 년 후 ‘힙‘한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로 성장한 이야기를 담은 책 <이민을 꿈꾸고 있는 너에게>가 떠올랐다. 특히 인상 적였던 건 호주에서의 삶과 한국에서의 삶을 비교한 부분이었다. 처음엔 무엇이든 빠르고 친절하게 고객의 불편사항이 처리되는 한국과 달리 더딘 데다, 불친절하고, 거기에 비싼 비용까지 내야 하는 호주에서의 삶이 익숙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부분을 읽고선 나는 역시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야, 라는 뻔한 결론을 예상했다.  근데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그건 고객에게 편한 삶이 고객에게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노동자는 고객 만족을 달성하기 위해 본인을 희생해야 하는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한 때 30분 내 배달을 약속했던 피자집이 오버랩됐다. 당연히 고객은 주문한 피자를 빨리 받으면 받을수록 좋겠지만, 밀려오는 주문, 폭염, 폭우의 날씨, 러시아워 같은 엎친 데 덮친 격 같은 상황이 겹겹이 쌓이면 그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아니, 30분 배달을 지키지 못하면 시급이 깎이는 상황에서 오토바이 위 배달원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속력을 무리하게 높여서 라도 '빨리' 배달 하려고 하지 않을까,  생계를 위해 어쩌면 어쩔 수 없이 벼랑 끝에 발을 내딨는  위험을 감수한 건 아닐까,   저자는 호주에서는 노동자로서의 삶이 존중되고, 그에 걸맞은 대우가 수반된다고 했다. 물론 소비자로서 일상이 조금 불편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의 삶이 더 인간적인 삶이라고 덧붙였다.






       서비스 센터에서



스마트폰에 문제가 생겨서,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서비스 센터에 구비된 종이컵에 녹차 티백을 우려서 대기표를 들고 폭신폭신한 쿠션이 장착된 의자에서 내 순서가 오길 기다렸다. 몇 분 후, 유니폼을 입은 상냥한 미소를 띤 여직원이 사탕 바구니를 들고선 다가왔다. 사탕을 건네줬다. ‘요즘은 이런 서비스까지 해주는구나’ 역시 한국이야,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객센터엔 고객을 위한 볼거리도 다양하게 구비돼 있었다.  책 한 권을 집어선 읽다 보니, 대기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근데 여직원이 또다시 사탕바구니와 함께 다가왔다. 사탕을 즐겨 먹지 않아설까, 이 상황이 불편해졌다. 대기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고객의 지루함을 덜어주려는 노력까지가 그 여직원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에  포함돼 있는 걸까,  아니면 왜 이렇게 대기가 길어지느냐고 항의하던 고객의 클레임이 누적된 탓일까,  아니면 아직 한국에서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의 권리를 접한 탓일까,


'적절하다’를 검색해봤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적절하다.", “꼭 알맞다.”, ‘알맞다’는 “일정한 기준, 조건, 정도 따위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다. 를 의미한다. 그럼 또 궁금해진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 적절한 지점은 어딜까, 적어도 누군가가 마음을 포함, 다치지 않는 안전 지대가 보장되는 곳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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