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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Sep 12. 2020

브런치 누적 글 '52'의 의미

뻔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뻔하다고 생각했다. 어제가 그제 같고, 오늘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마치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살고 있다고 여겼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내 삶은 더 비루하고 초라해졌다.  극적인 사건이 도무지 내 인생에 등장할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어. 따분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듯 바라기만 했다.  물론 좋은 일은 하늘에서 '' 떨어지지 않았다.           

 

블로그를 시작했다. 주변의 추천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힘이 꽤 들어갔다. 시의성이 있는 글감으로 정제된 글을 남기고 싶다는 과욕 때문이었다. 물론 의도대로 블로그는 운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쌓였고, 더불어 포스팅도 쌓였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힘이 빠졌다.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건 아니다. 두 자릿수의 조회수가 긴장 모드를 해제시켰고, 기대치를 낮추게 만들었다. 내 영역이 아닌 '완벽'에 관한 집착도 버렸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꾸준함 역시 다소 느슨해졌지만 그래도 방치하진 않았다. 계속 적어나갔다. 여행, 책, 맛집, TV 프로그램, 새 제품 리뷰에 관해 적었다. 그날의 인상 적였던 일도. 첨예한 이해관계의 그물이 얼키고설켜 그누구에게도 속시원하게 할 수 없는 욕을 했다. 일종의 대나무 숲이었다. 그렇게 기록을 하면서 나는 뻔한 내 하루가 사실 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뻔한 하루는 관성과 타성에 젖은 내 선택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자아성찰을 했다. 조금 새로운 시도를 했을 뿐인데,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시간이 생겼다. 적는 것보다 지우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과정 끝에 업로드 버튼을 누룰 때, 완성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좋아요와 댓글로 타인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모되고 소진되는 일상의 무기력함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마지막으로 막상 기록을 하다 보니, 뻔하다고 여겼던 내 일생에 기록할 일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 다녀온 여행 포스팅을 뒤늦게 기록하는 일 대표적이다. 그렇게 워밍업을 하고, 나는 브런치로 넘어왔다. '매주 하나'를 목표로 글을 올리고 있다. (물론 매주 글을 올리진 못했지만) 지난주 기준으로 딱 52개-매주 1개씩 1년을 한 결과- 의 글을 쌓았다. 엄청 뿌듯했다. 크게 구독자수가 증가한 것도 아니고, 좋아요가 폭발적인 것도 아니지만 매주 하나, 업로드를 해낼 수 있구나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포스팅하시는 분들  앞에서 부끄럽지만.   


최애 드라마로 꼽는 [이태원 클라쓰]에 주인공 박새로이가 이런 말을 남겼다. 사는 게 도통 시시하고 귀찮다는 여주인공에게.     


그렇게 귀찮으면 죽어. 헛똑똑이네. 자기가 무슨 신이라도 된 마냥. 난 항상 일이 끝나면 이 거리를 달려. 내일도 일어나면 가게문을 열고 오늘이랑 똑같이 일을 하겠지. 계획대로. 반복적인 일상 같지만 사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진 아무도 몰라. 대뜸 시비를 걸었던 승권이는 단밤에서 홀을 봐주고 있고, 가게 영업정지시킨 네가 우리 가게 매니저야. 뻔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


주옥 같은 대사가 많지만 나는 이 대사가 최고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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