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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Aug 23. 2020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

TV를 보다가 반가워, 미얀마


TV를 보다가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미얀마가 방송되고 있었다. 익숙한 곳이었다.  참 좋았던 그래서 지금 더 그리운 인레호수였다.  몇 년만일까, 조우한 인레호수가 반가워서 넋 놓고 보게 됐다.





   




인따족의 일상이 그려지고 있었다. 호수의 아들이란 뜻의 인따족은 인레호수에서 사는 미얀마 민족이다. 과자 2 봉지를 500짯(한화 약 400원)에 구입하곤, 배를 타고 배를 저어 집으로 향하는 꼬마 아이가 보였다. 500짯이라는 금액을 보니까 미얀마에서 자주 사 먹던 난이 연상됐다.  베트남에서 얻은 탈로 현지 음식을 경계하게 된 나는 뜨거운 불에 튀긴 난을 자주 사 먹곤 했다. 갓 튀긴 뜨거운 난은 갓 구운 빵만큼 의심을 거둬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또 자극적이지 않은 무색무취에 가까운 소탈한 맛도 좋았다. 그날은 원데이 인레 투어를 하는 날이었다. 숙소로 픽업 온 투어가이드를 따라 가는데, 난을 튀기는 식당을 발견했다. 바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난을 주문했다. 근데 사장님이 꽤 복잡다단한 표정으로 나 한번, 현지인 한 번, 또 나 한번, 현지인 한번.......시선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의아했는데,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난의 가격이 고작 100짯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동안 사 먹었던 500짯에서 700짯에 이르는 가격이 폭리를 더한 가격이었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외국인에게 관광을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순박하다고 믿었던 미얀마 사람들한테 제대로 뒤통수 한 대를 가격 당한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때 나를 다독이기 위해 김수영 시인의 시를 검색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서 서 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1965.11.4)


  500짯의 내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 장면은 인따족의 어업법이었다.  꼬깔콘처럼 생긴 도구로 물고기를 잡는데,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현지인의 무안해하는 미소가 화면에 비췄다. 그리고 그 무안함을 마지막으로 그다음 장면부턴 승승장구였다. 도구를 호수에 던지면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적인 수확을 기뻐하며 어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이 되었다. 어부의 아내가 화면에 나왔다. 그리곤 입구에 보관해놓은 물고기를 꺼냈다. 수상가옥은 물고기를 보관하는 일에 최적화돼 있었다. 그녀는 아가미를 능숙하게 벌려서 밧줄로 엮었다. 그리곤 시장으로 향했다.  물고기 한 마리의 가격은 2100짯, 한꺼번에 모두 사가는 분께는 조금 저렴하게 판매하겠다고 했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물고기를 사셨고, 그들은 판매한 수입의 절반으로 부처님께 봉양 드릴 꽃을 샀다. 그들은 하루에 두 번, 파고다를 찾아 기도를 한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파고다의 전경에서 기도 드리는 모습으로 화면이 전환됐다.   



내가 방문했던 파고다였다. 그곳에서 스쳤던 사람들이 그 시간들이 아련한 색채로 추억이란 이름으로 소환됐다. 나는 그날 가이드와 함께 호수 위 마을을 둘러봤다. 가장 인상 적였던 건 대장장이가 있던 방앗간이었다. 건장한 청년 셋이 뜨거운 불에 쇠를 담그고선, 꺼내 들었다. 그리곤 망치로 보이는 연장을 가지고 사이좋게 리듬에 맞춰 힘을 가했다. 그렇게 하기를 수차례,  그럴듯한 칼 하나가 완성됐다. 언젠가 역사 교과서에서, 민속촌에서 본 그 장면이 인레호수에서는 일상이었다. 수공예 제품을 제작하고 있는 상점도 방문했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의 줄기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스카프, 롱지, 가방 등의 상품을 제작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목이 긴 빠다웅족 아이를 상점 입구에서 보았다. 목에 링 장식구를 여러 개 단 7,8세쯤의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한껏 화가 난 표정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미얀마에서 태어나서 숙명처럼 주어진 그녀의 하루가 여행을 좋아하는 한국여자에겐 조금 짠했다. 그곳에서 숄 하나를 구매했다. 일교차가 컸고, 밤은 꽤 쌀쌀했으므로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였다. 여행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예쁘기도 했고. 그리고 잎담배를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티크 목으로 배를 만드는 현장도 눈에 담았다. 인따족이 서울에 오게 된다면, 그들 역시 나처럼 서울의 낯섦에 눈에 떼지 못하겠다, 고 생각했다.



인레 호수를 다녀온 후, 그곳에서의 하루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을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배를 타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시장을 가서 장을 보고, 빨래를 하고, 배 위에 올라 집 난간에 세탁한 옷을 널고, 뽀송뽀숑 마른 그 옷을 아이에 입히는 하루를.  TV를 보고 그 하루가 조금 더 정교하게 덧붙여졌다.   

더 생생해졌다.

      

다녀온 여행지를, TV를 통해 다시 보는 건 잊고 지내던 동창을 길거리에서 만난 것처럼 반갑고, 정겨운 일이구나, 했다. 코로나 19 시대의 여행법이라고 할까.


     그나저나

다시 여행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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