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란 파스타가 급 땡겼다. 마침 냉장고에는 명란젓이 있었다. 한가한 주말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코로나 확진자를 알리는 문자에 외출도 딱히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명란 파스타 레시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두어 개를 연달아 읽었다. 레시피마다 조금씩 재료와 방법이 달랐지만, 그간 알리오 올리오 만 주야장천 만들었던 이력 덕분일까, 곧 내 레시피의 방향이 정해졌다. 검색을 멈추고, 필요한 식재료를 하나씩 준비했다. 올리브유, 마늘, 양파, 페페로치노, 버터, 후추, 바질까진 거침없는 손작업
이었다. 근데 스파게티 면을 선택하는 부분에서 잠시 주춤했다. 칼국수 같은 비주얼의 페투치네를 좋아하는데, 최근 두어 번 면발 접촉 사고로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결국 페투치네를 쓰지 않기로 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물을 올렸다. 팔팔 끓는 물에 소금 한꼬집에 면발을 투하했고, 그 사이 필요한 일들을 해나갔다. 야채를 먹기 좋게 자르고, 명란젓도 알갱이만 쏙 꺼냈다. 그사이 면발은 적당히 익었고, 나는 조심조심 그릇에 옮겨 담았다. 면수도 챙겼다. 그다음 올리브유와 버터를 충분히 달궈진 팬에 투하하고, 마늘과 페페로치노, 양파를 볶아줬다. 후추도 이 단계에 더해줬다. 익숙한 향이 주방을 가득 메웠다. 면과 면수 그리고 명란젓도 함께 넣고 볶아 주었다. 명란 파스타가 '짠' 하고 완성됐다. 바질로 비주얼도 챙겼다. 진짜 완성이었다. 그리고 처음 한 것치곤 꽤 만족스러운 맛이 나왔다. 양파, 마늘 한 톨 남기지 않을 만큼, 양념치킨을 먹었는지, 후라이드를 먹었는지 아무로 모르게 하라는 명언처럼 그야말로 접시 바닥을 깨끗이 비워냈다. 한 때 요리 '떵'손이었던 나, 명란 파스타까지 이렇게 만들다니 내가 참 기특했다. 스파게티에 있어서만큼은 알리오 올리오로 기본기를 탄탄이 잡은 느낌이랄까. 나의 조금 늦은 아점이었다.
스마트 도서관이 있다. 지하철 역사에서 책을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스쳐지나기만 하고 호기심 조차 품지 않았던 서비스이기도 하다. 이유를 굳이 밝힌다면, 나는 서점에서 새 책을 읽을 때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타입이라고 믿었고, 집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대형 서점이 있었다. 또 책을 들고 다니는 것도 번거로워할 만큼 가능하면 가방을 가볍게 다니고 싶은 소망도 있었다. 근데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서점의 의자가 코로나로 폐쇄 조치가 취해졌다. 그런 와중, 집 앞에서 보던 스마트 도서관을 다른 곳에서도 몇 번 보니, 궁금증이 커졌다. 치킨집 창업 후, 3년 내 폐업하는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던가, 암튼 없어지지 않았다는 건 또 주요 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반증일 테니, 한번 이용해보자가 됐다. 그렇게 한 달, 지금의 난 스마트 도서관을 찬양하는 단계에 이르게 됐다. 유튜브로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시켜놓고, (요즘 내 애정 곡은 적재의 별 보러 가자다) 커피 한 잔 또는 캔맥주 한 잔 곁들이면서 '마스크 쓰지 않고' 책을 읽는 시간, 요즘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 내 방에 있었고, 나는 그렇게 책을 읽었다. 얼마 전, 이케아에서 산 포엥 의자에 앉아서. 이게오늘 나의 하루다.
두유커피
불과 몇 달 전, 너무나 익숙하게 편안하게 카페에 가서 보내던 내 주말 시간이 이렇게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코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덕분에 믹스커피와 베지밀의 꿀 조합을 발견하기도 했다. 집에 먹어야 할 믹스커피가 있었고, 원래 우유를 믹스해서 먹었는데 마침 우유가 떨어져서 두유를 대신 넣어 볼까, 하고 넣었던 것인데 조금 오버하면 커피맛이 스타벅스 못지않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저자가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 후 삶에 대해 적은 책이 있다. 제목은 [퇴사하겠습니다]다. 거기엔 "무언가를 없애면 거기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원래 거기에 있었지만 무언가가 있음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별세계의 매력이 상당해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퇴사 후, 수입이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유지하던 소비를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과정에서 저자가 느낌 감회다. 물론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코로나로 이전에 고수하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내 주말이, 서점에서 책을 읽던 내 일상이 사라진 세계에 새로 등장한 오늘의 하루를 곱씹어보면, 100%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