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근데, 이상했다. 점점 속도가 줄어드는 게, 달리는 게 영 시원찮았다. 결국 멈춰 섰다. 보도 한가운데였다. 고개를 살짝 돌렸다. 자전거 체인이 내 플리츠스커트를 꽤 많이 먹은 게 보였다. 안장에서 내려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근데, 입고 있는 치마가 아니, 체인에 말려 들어간 치마가 내 행동을 제한했다. 마음 같아선 몸을 확 돌려서 체인을 돌려보고 싶은데, 현실은 엉거주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세였다. 그야말로 대략 난감 시추에이션이었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 했다. 우선, 자전거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도보 한복판에서 벗어나자고 했다. 그나마 한산한 곳으로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이동하고 있는데, 삼십대로 보이는 여성 분이 다가왔다. 그리고 반가운 한 마디를 건넸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평상 시라면 예의상 거절을 한 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여유는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로 내 상황을 대신했다. 그녀는 그때부터 손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체인에 낀 내 스커트 구출 작전을 성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열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했다. 힘으로 빼내기, 페달 굴리기, 자전거 직진하기 등등...... 하지만 내 스커트는 심술꾸러기 마냥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이 점점 검은 기름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며, 이 난감한 사태를 어찌 돌파해야 하나를 궁리했다. 가위로 스커트를 잘라야 하나? 길 한복판에서 가위를 어디서 구하지? 저기 보이는 상점에 들어가야 하나? 나는 갈 수 없는데....... 그 쯔음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다가오셨다. 그리곤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도움을 주셨다.
"자전거를 들어 올리고, 페달을 손으로 돌려보세요."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그분 지시대로 하니까 그토록 애를 먹이던 스커트가 체인에서 스르르 분리됐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었는데, 시야가 확 트이는 기쁨이 밀려왔다. 다행이다, 안도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께서는 한마디를 더 보태셨다.
"기름 때는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할수록 좋을 거예요. 뜨거운 물에 샴푸를 풀어서 살살 문질러보세요."
그리고 그녀는 갈길을 떠났다. 나는 비록 치마가 못 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그 두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떠나는두 번째 아주머니를바라보면서, 처음 나에게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주신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분은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네요."라는 훈훈한 말을 남기고는 막 도착한 버스에 오르셨다. 버스정거장 부근이었다.
나는 기름때 잔뜩 묻은 스커트를 구하기 위해 집으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그리곤 아주머니의 조언을 다시 한번 되새김했다. 드라마 '연애의 발견'이 떠올랐다. 연리지 나무를 앞에 두고, 태하와 여름이가 두 손을 잡고 있는 가운데, 사랑에 빠진 여름이가 "지금은 우리도 연리지"라고 사랑스럽게 말하는 장면이었다. 비록 나의 현실에서는 자전거와 연리지 체험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건네주는 따뜻한 사람이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메마른 도시, 비정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태주 시인의 시[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이 돼 주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추가해야겠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리스트를 풍성하게 늘려가는 2021년을 맞이해야지, 하고 조금 이른 새해 계획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