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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Aug 14. 2021

쫄보지만 생리컵을 써보기로 했다

삶의 질을 올려준 두 가지 아이템



생리컵에 입문하게 된 계기



생리컵을 질렀다. 생리대에서 검출된 발암 물질로 시끄럽던 시기에도 뚝심 있게(?) 쓰던 생리대였는데...... 내가 생리대와 결별 선언을 하게 된 건 엉뚱하게도 샤오미 캡슐커피 머신 때문이다.  



알리익스프레스 타임세일

11주년을 맞이한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건 샤오미 캡슐커피 머신을 단 4일 간, 단돈 23달러에 하루 한정 100명에게 판매한다는 것. 말로만 들었던 샤오미라는 브랜드, 역시 말로만 들었던 캡슐커피머신을 그 정도 가격이라면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행사 시작 고작 1분이 지났을 뿐인데  매진이 떴다. 대신 10달러  더 비싼 - 캡슐이 좀 더 포함된 - 옵션만 구매 가능했다. 잠시 고민했다. 10달러 더 주고 사볼까 하고. 하지만 나는 - 필요한 건 없어,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할래 -를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되새기는, 이 말은 아직도 미니멀과는 거리가 먼, 그럼에도 중요한 건 아직까지도 미니멀 라이프를 포기하지 않은... 암튼 나는  알람을 설정하기로 했다. 다음날 오후 4시,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23달러가 아니면 샤오미 캡슐커피 머신을 사지 않겠다고....... 경험해보고 싶다가 한 단계 레벨업  구매하고 싶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주 가뿐하게 득템에 성공했다. 너무 쉬운 성공에 '나, 호갱님 된 걸까' 금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착한 가격이니까, 그렇게 합리화했다





캡슐 커피 머신 후기를 적으라고 한다면 나는 "와우(WOW)"를 외치겠다.  코드 꽂고, 캡슐 넣고, 버튼만 누르면 근사한 커피가 추출됐다. 참고로 캡슐 커피 머신이 등장하기 전엔 이랬다. 커피빈을 갈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커피빈을 프렌치 프레소에 옮기고, 물을 붓고, 4분을 기다리고...... 캡슐 커피 머신을 만나기 전까진 그저 익숙해진 일상이었는데 캡슐 머신의 등장으로  애정 하던 프렌치 프레소가 구시대 유물로 잊혀가고 있었다. 그렇게 스타벅스, 일리, 라바짜와 같은 여러 가지 캡슐 커피를 신나게 질렀다. 거기에 바닐라 시럽까지 갖추니, 홈카페가 별 거 아니구나, 싶었다. 삶의 질이 한 단계 상승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했다. 나는 캡슐커피머신에 푹 빠졌다.




그러다, 어떤 글을 읽게 됐다.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진 않지만 캡슐커피가 환경에 이롭지 못하기에, 더 이상 캡슐 커피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었다. 반년을 부지런히 마셔도 부족하지 않을 캡슐커피 라인을 구축한 나는 그 글을 읽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같아서는 안된다는 지성의 작동이랄까. 나는 궁리를 시작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평화롭게 풀어갈까. 그러다 내가 배출하는 환경오염원을 떠올리게 됐다.  일회용 생리대가 스쳐 지나갔다. 생리대 대신 캡슐커피로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로 했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루 1잔 이상 마시지 않기도 추가해야겠다. 진짜 이게 나의 최선이다.







고군분투 생리 컵 적응기



생리가 기다려진다

와우, 신세계




모든 리뷰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리뷰에 동반된 표현들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신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내 생애 최초로 마법의 날을 기다리게 됐다. 그리고 드디어 디데이(D-DAY). 음, 결론을 말하면 나는 그날 생리 컵을 경험할 수 없었다. 수차례 시도를 지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탐폰이 난이도 중이라면 생리컵은 그보다 높은 난이도라고 하더니...... 그제야, 나 탐폰도 무서워서 실패했었는데...... 괜히 샀나...

 ... 3만 원이면  스타벅스 커피가 6잔, 사고 싶은 디아민 잉크가 5병... 아니야, 다시 한번 해보자.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하니...... 아직은 포기하지 않을래...... ,



갈팡질팡 하는 마음으로 조금 오버하면 현기증이 날 만큼 여러 번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난 건 유쾌하지 못한 좌절감뿐이었다. 그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첫 달이 지나갔다.




다음 달이 다. 생리 컵을 떠올리니, 못 마친 숙제처럼 찜찜함이 밀려왔다. 의욕이라고는 정말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첫 날을 보내고, 둘째 날, '다시 한번'의 정신으로 기대감을 접고 생리 컵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근데 의외로 쉽게 삽입에 성공했다,라고 나는 그 당시 생각했다. 왜냐면 지난달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수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법 익숙해진 지금과 비교하면 5분가량 소요되었으니 그렇게 순조롭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팬티라이너를 부착했다. 일회용 패드를 줄이려고 시도하게 된 생리컵인데 팬티라이너라니, 음...... 우선은 생리 컵에 집중하자..... 화장실에서 나왔다. 신경이 온통 생리 컵에 쏠렸다.  내 몸에 실리콘이 삽입돼 있다니, 근데 이물감이 안 느껴지다니 신기했다.  나쁜 생각도 떠올랐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독성 쇼크 증후군, 골반장기 탈출증 같은 부작용들이, 소소 하겐 제대로 착용했을까 하는, 그러다  언제 이 생리 컵을 빼내야 할까, 라는 실질적인 문제를 만났다. 인터넷 상에서 취합한 데이터를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제품 상자엔 최대 12시간 착용이라고 표기돼 있지4시간에서 8시간을 권장

양이 많은 날은 4시간마다 교체

적은 날엔 10시간 착용하기도 한다

권장 시간을 초과해서 착용하면 꾸릿꾸릿한 냄새가 난다

.....


문젠 내가 생리양이 많은 편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것. 생리 컵을 삽입할 때도 느꼈지만 나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구나,를 생리 컵 덕분에 자아성찰 아닌 자아성찰을 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꽤 똑똑해서 느낌으로 다음 행동을 취하게 해 줬다. 대략 5시간 지난 후 느낌이 왔다. 무언가가 흘렀다.  화장실로 직행했다.  팬티라이너에  혈이 소량 묻었다. 드디어 생리 컵을 빼내야 하는 시간이  . 그리고 나는 생리컵 입문자가 겪을 수 있는 최대 위기의 시간을 맞이하게 다.  분명히  내가 넣은 생리 컵인데, 생리 컵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략 난감으론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불안, 초조,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시간이 경과할수록 동시다발적으로 강도를 높였다.




손을 깨끗이 씻은 후, 변기에 앉아 힘을 주면 생리 컵의 끄트머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럼 진공을 해제한 후, 살살 지그재그로 빼낸다.





2줄로 정리되는 이 간단한 일이 내겐 정말이지 간단하지 않았다.   '이런 일로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  침착하게 다시 해보자...... 어딨지?...... 절대 가고 싶지 않다...... 어딨니?

병원 가야 하나, 진짜 병원 가야 하나......

다시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고

...... 제발 안 가게 해주세요.......'




진심 울 것 같은 심정이 돼 버렸을 땐  생리 컵을 산 걸  후회했다. 괜한 짓을 해 가지고 굳이 안 겪어도 될  일을 겪다니,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돌리고 싶다고




그러나 결국  생리 컵을 꺼냈다. 끄트머리를 찾는 것도 난관, 진공 된 생리 컵의 진공을 빼는 것도 난관...... 진공이  해제된 상태를 유지하며 꺼내는 것도 난관이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생리컵이 자리 잡는다는 것과  불안과 초조함은  상황을 개선하는 데  전혀 보탬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힘겹게 빼낸   생리 을 다시 삽입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패드를 착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리 컵 빼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더 공부해보기로 했다.





 그 후 하루 한 차례, 생리 컵을 착용했다. 무리하게 적응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횟수가 늘수록 시행착오가 줄어들면서 익숙해졌다. 착용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변기에 생리 컵을 떨어뜨렸다. 1 플러스 1로 구입했다 쳐도 이만 원이 증발해버린 거다. 안타까움을 머금고,  한나컵에서  페미사이클로  갈아타게 됐다. 두 제품을 비교해보면 한나컵은 삽입이 쉬웠다. 반면 빼내는 건 어려웠는데 페미사이클은 반대였다. 삽입이 어렵고  대신 빼내는 건 제품에 부착된 링의 도움을 받으면 아주 쉬웠다. 좀 더 설명하면 한나컵은  심플한 구조의 컵 모양이라면 페미사이클은 샘 방지를 위한 이중 구조로 돼 있다. 그리고 그 구조로 인해 한나컵은 폴딩이 쉽지만 페미사이클은 폴딩이 한나컵과 비교했을 때 어려웠다. 역시 같은 이유 한나컵은 몸 안에서 컵 모양이 유지가 되지만 페미사이클은 온전히 펴지지 않는다. 그렇게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했다. 그렇게 생리 컵이란 이전에 몰랐던 세계에 들어서게 됐다.



좌 한나컵 우 페미사이클




생리 컵의 장단점




뜻하지 않게 쓰게 된 생리 컵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진입장벽이 높아서 도중에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생리 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아서

생리는 성가신 것이라는 생각을 할 만하네, 생리로 바꿀 수 있었던 것 같다. 삶의 질이 캡슐커피머신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업그레이드되었다.

좀 더 일찍 생리 컵에 입문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만큼

생리 컵 예찬자가 돼 버렸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생리 컵으로 내가 얻은 것들을 찬찬히 리뷰를 해보면  우선, 시각적인 것. 그날마다 주기적으로 패드를 부착하고 제거하면서 보게 되는 피를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오리지널 혈과 패드에 흡수된 혈이 그토록 다른 인상을 남기는지 생리 컵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거다. 나 포함 그날에 예민해지는 여자들, 그 예민함에 그 시각적인 테러가 분명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라고 말해보겠다. 또 생리대와 혈이 만나는 순간부터 생성된다는 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생리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 더 이상 안 가져도 된다. 세 번째는 좀 거창하게 나에 대한 이해라고 말해보겠다. 생리혈을 통해 내 건강 상태를 궁금해하고, 알아가게 됐다.  생리 컵을 착용하면서 생리일수에 따른 생리양과 생리혈 색깔과 같은 특이사항을 적어나가 보니, 나 같은 경우엔 첫날에서 셋째 날까지만 생리 컵을 착용하고, 그 이후는 면생리대 또는 생리팬티를 착용하는 식으로 나만의 루틴을 만들 수 있었다. 넷째 생리기간이 짧아졌다. 생리 컵 자체가 체내에서  생리혈을  받아내서일까, 미처 배출되지 못한 혈이 시차를 두고 배출되는 일이 안 생기는 거 같다.  다섯째, 활동의 제약이 사라졌다. 그날이어서 뒤척뒤척 조심스레 자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수영장도 갈 수 있고, 온천도 편히 갈 수 있다. 정말 이 부분에서 조금 더 일찍 생리 컵을 알았더라면 좋았겠다, 싶다.

또 무엇이 있을까. 생리대를 처리할 때 돌돌 말아서 휴지로 한번 더 싸서 버렸는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 쓰레기가 확실히 감소했다. 

 



반면 단점도 적어보면,  몸 안에 삽입되는 물건이라 사용 전 생리 컵 살균을 포함,  청결이 특히나 강조되는데

그 말은 그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신경 쓸 게 많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또 앞서 길게 언급했듯이 삽입하고 꺼내는 일련의 일들이 적응하기까지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쉽지 않다는 것. 

비용에 대해 말하면 생리 컵의 가격대가 저렴한 건 중국산 1달러짜리도 있고, 비싼 건 십만 원대까지 있는데, 사람마다 신체의 구조가 상이해, 적합한 제품을 찾기까지 지출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나처럼 변기에 생리컵을 떨어뜨리면 새 제품을 구입해야 다. 물론 사고가 없고, 처음 산 제품이 골든컵이라면 권장 사용기간 2년간 생리대 구입 비용이 따로 들지 않으니, 경제적이겠지만. 






이상이 생리 컵을 써보고 적어보고 싶은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생리 팬티도 소개하고 싶다.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패드를 부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패드 부착이 필요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리컵   +  생리 팬티의 조합도 상당히 만족스럽




더 이상 그날이 두렵지 않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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